[2부]탄소중립·에너지 전환 <2>탄소중립 실현 위한 산업 정책 방향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함께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마련해 녹색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지난 정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2018년 대비 40% 이상 줄이는 것으로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새 정부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세계 보편적 규범 수호에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격을 갖추겠다는 국정철학을 명확히 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탄소무역장벽을 뛰어넘을 배출권거래제(ETS) 설계 △녹색산업·기술 집중 육성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확립과 산업 탈탄소 촉진 등 세부 핵심과제를 추진할 전망이다.
◇EU 'fit for 55' 같은 한국 'fir for 40' 필요
윤석열 정부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세(CBAM) 등 탄소무역장벽에 대응하고 산업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상할당 비율을 상향하고 대상까지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EU 집행위는 1990년 대비 최소 55%를 감축하겠다는 EU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춰 기존 제도·정책을 수정하는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를 작년 7월 제안했다. EU는 △산업에 더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기준과 규제를 적용하고 △오염원에 대한 탄소가격과 세금을 부과하며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세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세부 실행계획으로 △2026년 CBAM 도입 △ETS 개정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등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지난 22일(현지시간)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찬성 450표, 반대 115표, 기권 55표로 CBAM 도입 법안이 가결 처리됐다. ETS 개정안, 사회기후기금 창설안 등 연계된 탄소시장 개혁 법안들도 함께 통과됐다. EU는 2027년부터 CBAM을 실행해 역내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부담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EU 이사회가 지난 3월 승인한 CBAM 규제대상에는 전력, 철·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등을 수출하는 국가의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만 적용됐다. 반면에 유럽의회는 이사회가 승인한 품목 이외에 유기화학물질, 수소, 일부 플라스틱 등 품목을 추가하고 생산공정에서 사용된 전기 등 간접배출까지 포함시켰다.
전문가들은 CBAM은 모든 EU 회원국에 일괄 적용되는 규제인 만큼 국내 산업계와 정부는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중장기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2030년 온실가스배출을 2018년 대비 최소 40%를 감축하겠다는 '2030 NDC'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 '핏 포 40(fit for 40)' 패키지를 수립하고 그에 맞춰 기존 제도·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외감축분 3350만t 조달에 대한 로드맵과 구체적 실행 계획을 세워야 시기에 떠밀리지 않고 조달 시 협상에 유리해질 수 있다”면서 “합리적 비용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탄소배출 감축분을 조달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앞서 국외감축분을 선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 10% 수준…향후 지속 확대
유럽의회는 ETS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EU 역내 산업계에 대한 탄소배출권 무상할당을 2027년부터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 또한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유상할당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정부는 현행 3기(2021∼2025년)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이 10% 수준인데 4기(2026∼2030년)에는 그 비율을 더 상향할 계획이다. 전량 무상할당 대상인 다배출업종은 유상할당으로 단계적 전환해 유상할당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율이 높은 업체가 낮은 업체에 비해 배출권 할당에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할당방식(BM 할당)을 개선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일 업종 내 배출원 단위를 기준으로 할당하면 효율이 높은 기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 유상할당 수입을 통한 기업의 감축활동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당장 올해부터 감축설비 지원, 저탄소 청정연료 전환 등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확대한다. 2015∼2021년 7년 동안 144개 기업을 지원했다면 올해부터 현 정부 임기 마지막해인 2027년까지 6년간 900개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감축투자 촉진을 위한 지원사업 다변화 방안도 마련한다. 탄소차액계약제도(CCD) 등 신규 사업 도입방안 연구를 추진한다. 정부-기업 간 탄소가격 보장 계약을 통해 혁신적 감축기술을 조기 적용하는 등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투자를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EU 수준 탄소가격제 도입…자발적 배출권거래 시장 조성
앙헬 구리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탄소에 노골적인 가격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국제기구들도 탄소가격제 도입을 권고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보고서는 지구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평균 탄소가격이 1t당 75달러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EU 수준의 탄소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소가격제는 오염자부담 원칙에 따라 배출량의 감축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수단으로, 탄소배출의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 차이를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시장이 부담하도록 한다. 기업과 개인이 탄소배출을 감축하도록 유도해 시장 실패와 기후 과제에 대응하는데 유용한 정책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배출권거래제는 시장에 의해 형성된 배출권가격을 지표로 비용효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유연성 메커니즘이 설계됐다”면서 “온실가스 내부감축, 배출권구매, 외부감축사업 투자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각자 경제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글래스고 기후총회에서 파리협약 제6조 탄소시장에 대한 가이드라인 채택 후 정부 주도 '규제 시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자발적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매킨지는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이 지난해 10억달러 수준에서 2030년 최대 5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사무총장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역사회 기반 산림 복원 프로젝트 '바이오차' 등에서 발급된 총 139만1187t 크레디트를 구매해 과거 배출량을 상쇄했다”면서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구매한 크레디트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나 배출량 상쇄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국내 ESG 평가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는 등 자발적 탄소시장 접근성을 높여 전 국민의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