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WTO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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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MC-12)에서 WTO 개혁을 골자로 하는 최종 결과문서인 각료선언이 채택됐다. 2017년 MC-11에서 못한 각료선언을 채택한 것은 다자주의 무역 성과로 평가된다. 각료선언 채택은 WTO 164개 회원국 전체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데다 2015년 MC-10 이후 7년 만에 이뤄진 통상장관 합의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지만 박수를 치기에는 이르다. 개혁은 이제 시작 단계다. 일례로 경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분쟁해결기구 정상화가 중요하다.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 무역행위에 보복행위를 가하는 무역구제제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무역분쟁화가 되면 이를 해결해 줄 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교역 규모가 세계 8위로 크다. 무역의존도도 높아 다자무역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약화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심화한 미-중 무역 갈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각광받고 있다. WTO는 미-중 무역 갈등을 다자무역체제로 대응하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협정이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우리 정부도 IPEF에 적극 참여하고, CPTPP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지역주의와 양자주의 흐름에 탑승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자무역주의 체제가 외면받는 현실에 대한 최선의 대안일 뿐 최상의 대책이 아니다. 최상은 다자무역체제를 회복하고 지역주의와 양자주의가 보완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과제가 WTO 개혁이다. WTO 입법·행정·사법 3권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통상규범을 정립하는 협상 기능, 확립된 규범을 충실히 준수하는 이행 기능, 국가 간 통상 마찰을 해소하는 분쟁해결기능 등이 모두 약화돼 있다. 특히 분쟁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분쟁해결기구(DSB) 상소기구(AB)는 2019년부터 무력화됐다. 상소위원 3명이 분쟁을 심리하는데 현 WTO 분쟁해결 시스템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후임 인선을 보이콧하고 있어 현재 위원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WTO 개혁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는 2019년 '월드트레이드리뷰(World Trade Review)'에 WTO 분쟁해결제도 법적 판결에 따른 무역 이익을 주제로 논문을 게재한 학자 출신이다. 그가 참석한 MC-12 각료선언에도 WTO를 개혁한다는 취지가 반영됐다. 그 가운데에서도 분쟁해결 시스템 개혁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164개국 통상장관들은 2024년까지 분쟁해결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제 WTO 오랜 숙원인 분쟁해결 기능을 개혁할 때다. 개혁에 합의하긴 했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한 수준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WTO를 개혁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형성됐을 뿐이다. MC-12 이후에도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되길 희망한다.


김영호기자 lloydmin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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