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109.54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7%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곡물가 상승 여파로 축산물 가격은 두 자릿수로 뛰었고, 농수산물과 가공품도 날마다 오름세를 구가하고 있다. 체감 물가가 뛰자 소비자 씀씀이는 자연스럽게 줄었다.
유통업계도 시름이 깊다. 일상 회복 기대감으로 한창 들뜨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원래 유통업은 물가 상승이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인플레이션 수혜 업종으로 꼽히지만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지속되면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20일 “수요가 줄다 보니 원가가 오르는 대로 판매가를 무턱대고 올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결국엔 순이익뿐만 아니라 매출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 리오프닝 특수도 희석됐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저성장·고물가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외출 횟수를 줄이고 식품이나 생필품 중심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리오프닝 효과를 상쇄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소비심리 둔화와 더불어 직면하게 되는 물류비·판관비·제조원가 상승은 마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유통업계는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 물가 안정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는 자체 할인행사 등으로 장바구니 부담을 줄이는 데 적극적이다. 협력사를 쥐어짜 생색만 내는 형태가 아니다. 이마트는 축산물 등 인상 폭이 가파른 품목의 직매입 비중을 높였다. 직접 상품을 분류하고 포장, 가격 상승분을 최대한 상쇄했다. 롯데마트는 대표 주도로 물가안정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에도 적극 응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GS리테일 등 대형 유통사 대표들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만나 수입 돼지고기 0% 할당관세를 즉시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가격 인상 최소화 등 물가안정 대책에도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정부도 유통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업 활력을 저해하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대형마트에만 집중된 의무휴업 등 유통 규제는 기업의 운영비용을 높이고 서비스 경쟁력을 악화시킨다. 영업 규제 완화를 통해 농수산물 판로를 넓히고 업태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한다면 가격 할인과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언제까지 기업의 자발적 희생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마트는 1분기에만 영업이익이 72% 줄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규제를 풀고 기업 부담을 줄여 줘야 위기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 대형마트 점포당 일요일 하루 휴무 시 발생하는 매출 손실은 3억원 안팎이다. 전국 140개 점포 기준 연간 1조원 상당의 매출이 감소하는 셈이다. 대형마트 업체들은 물가 방어의 최전선에서 민생 안정 역할을 다하겠다고 한다. 정부도 해묵은 규제를 풀어 활로를 마련해 줘야 할 때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