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타르월드컵 준비를 위한 브라질과의 평가전은 비록 대패했지만 세계 정상급 축구를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은 축구 경기에서 자주 사용되는 격언이다. 치열한 공격을 통해 상대방의 공격 의지를 꺾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격변하는 미디어산업에서 디지털 기술 발전과 인터넷 발달이 변화의 동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변화는 우주의 빅뱅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2년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글로벌 미디어 업체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넷플릭스가 일으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혁명에 동참, OTT가 레거시 미디어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실적 하락으로 겨우 2년여 불었던 뜨거운 열풍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이것이 미디어산업의 현재 모습이고 현재 위치다.
며칠 전 영국 BBC는 디지털 우선 계획(Digital First Plan)의 일환으로 예술·다큐 중심 'BBC4', 어린이채널 'CBBC' 등 자사의 2개 채널 송출을 몇 년 안에 중단하고 'BBC i플레이어'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BBC i플레이어는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 단말기나 PC 등에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앱 서비스로 2005년에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사 BBC가 전파가 아닌 인터넷을 통한 방송 송출 계획을 밝힌 것이다.
BBC는 영국 정부의 수신료 폐지 결정으로 이 같은 전략적 변화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약 2년 동안 수신료 동결 이후 인상이 예정돼 있지만 2027년부터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수신료 폐지는 정치적 맥락 안에서 이뤄진 결정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청자가 라이브 TV 시청에서 BBC i플레이어나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OTT로 이동했기 때문에 수신료 징수에 관해 많은 논란이 낳은 결과다.
시청자 연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시청 행태에 큰 변화를 가져온 팬데믹 기간에 25세 이하 시청자는 2020년보다 지상파 시청이 감소했다. 영국 방송통신규제위원회(OFCOM)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5~15세 어린이 56%가 라이브TV를 시청했고 96%는 OTT 등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이용했다. TV 시청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BBC의 결정은 수신료 폐지를 앞둔 비용 절감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시청자 시청행태 변화, 특히 지상파 방송에서 BBC i플레이어로의 시청 행태 변화에 따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BBC는 나아가 시청자의 75%가 매주 BBC i플레이어를 통해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결정을 보며 2014년 5월 OFCOM이 발행한 '무료 TV의 미래'(The Future of Free to View TV)와 '700㎒ 대역 미래 활용 고찰'(Consultation on future use of the 700㎒ band) 보고서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다. 지상파 방송이 사용하는 700㎒ 대역을 5세대(5G) 주파수로 변경 시 편익 분석의 일환으로 지상파 미래 모습을 그린 보고서다. 700㎒를 지상파 방송으로 사용, 아니면 5G로의 변경 활용 가운데 어떤 방식이 국민에게 혜택이 더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적어도 2030년까지 인터넷 TV 등 대체 기술로 전환되기 전에는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전송 역할이 계속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700㎒ 대역 이동통신으로의 전환 혜택이 더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파를 통한 전송이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체되고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기술 발전, 디지털 방송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방송시청 행태 변화가 이를 가능케 한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다.
영국 정부의 수신료 폐지 결정으로 촉발됐지만 BBC의 이번 결정은 거의 10년 전 OFCOM 보고서에서 언급된 방송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격언을 상기시킨다. 사느냐 죽느냐 선택의 갈림길로 우리를 밀어 넣은 미디어산업 환경 변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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