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17>보편자 역량의 시대

솔로 패러독스(Solow paradox). 노벨 경제학상의 받은 로버트 솔로 교수가 말한 일종의 퍼즐이다.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정보통신기술(IT) 투자가 산업 생산성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데서 불거졌다. 물론 얼마 후 IT가 만든 생산성 증가가 목격되면서 이 논쟁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즈음 생산성이 다시 침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솔로 패러독스의 귀환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기술은 가차 없이 변하고 있다. 어떤 것은 어느 비즈니스 할 것 없이 스며들고 있다. 모든 비즈니스에 보편자가 되어 가는 듯 보이기도 하다.

미래에 인공지능(AI)을 장착한 기업이 기존 기업을 몰아낼 것이라는 두려움은 자못 크다. 디지털 포토그래피라는 기술의 우위가 자명해졌을 때 후지는 필름 대신 평판 디스플레이, 심지어 화학공정을 화장품으로 용도 변경하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

반면 새 기술을 장착한 기업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앤트 파이낸셜(Ant Financial Service)은 설립 5년 만에 가장 큰 은행보다 10배 넘는 고객을 보유하게 됐다. 고작 5년 만에 기업가치는 가장 가치 있는 금융기업으로 불리는 JP모건 체이스의 거의 절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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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무작정 이런 기술을 따라나설 수도 없다. 한참의 투자 끝에 이 기술을 온전히 다룰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실패의 가능성은 언제나 더 높다.

누군가는 아마존의 킨들 성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라 기억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아마존은 소니와 소프트북(SoftBook)의 길고도 불운한 노력에서 배울 수 있었다. 거기다 이즈음 마침내 소비자가 원하는 저장용량, 배터리 수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묶어 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그만이면 다행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술 변화가 가장 파괴적인 건 핵심 역량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원래 핵심 역량이란 어떤 비즈니스에 국한된 것이었다. 비용, 품질, 브랜드, 전문성은 다른 비즈니스에는 쓸모없기 일쑤였다.

이러던 시대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동되는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어느 비즈니스에서도 관통한다. 아마존이 소매, 금융, 의료, 빅데이터, 비즈니스 서비스 같은 이질 산업에서 성공한 원인도 기술이 이들 산업을 관통하는 보편자 역량(universal capabilities)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런 보편자 역량은 '이 비즈니스란 이런 거야'를 정의한 기존 역량들을 훼손하는 데 거침이 없다.

1972년 퐁(Pong)이란 비디오 게임기가 나온다. 이 원시적인 게임기는 쇼핑몰에 핀볼 머신이랑 나란히 세워지곤 했다. 누구는 퐁, 또 다른 누구는 핀볼 머신을 각각 택했다.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란 게임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만그만했다. 하지만 1994년 299달러짜리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 나오자 몇 1000달러짜리 핀볼 머신은 수지맞는 투자가 아닌 게 분명해졌다. 결국 예정된 시간이 닥쳐온 셈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 각자의 몫이겠지만 만일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온전히 변해야 할지 모른다. 단지 적당히 수용하는 것으론 부족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이 바로 그것이 되어야만 그 여정은 끝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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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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