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5년간 106조원 규모 투자는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미래 준비와 함께 그 발판을 한국에서 만들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시켰다는 평가다. 배터리, 차세대 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기술 확보에 나서되 연구개발(R&D)·생산 핵심기지로 한국의 위상을 더욱 키우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계열분리, 적자사업 정리 등 구광모 LG 회장의 과감한 경영행보에 공격적인 투자까지 이어지면서 LG의 혁신은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미래 기술 선점
최근 LG 주요 계열사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불안감이 없지 않다. 코로나19 유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지속된 데다 주력 산업에서 중국 등 후발주자 추격과 경쟁 심화로 주도권을 유지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는 이같은 글로벌 불확실성과 경쟁심화 등 위기 상황에서 선제적 자원 투입으로 초격차를 유지하는 한편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 106조원 투자금액 중 미래성장 분야가 절반에 가까운 43조원에 달한다. LG는 배터리, 전장,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기존 주력 영역에서는 초격차를 실현할 미래 기술을, AI와 바이오, 친환경 기술 영역에서는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핵심은 5년간 10조원 이상 투입되는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영역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중국 CATL과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원통형 배터리 생산 등 기존 경쟁력을 배가할 설비 투자에 나서는 한편 전고체 전지, 리툼황 전지 등 차세대 전지 개발에도 나서는 것 역시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는 LG화학이 1조7000억원을 투입, 양극재, 분리막, 탄소나노튜브 등 개발에 속도를 낸다.
5년간 3조6000억원 자금을 투입할 AI·빅데이터 영역 역시 전사 차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 열쇠로 꼽힌다. LG는 LG AI연구원을 거점으로 세계 최고 수준 초거대 AI '엑사원'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고도화해 LG전자, LG유플러스,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등 주요 계열사에 녹임으로써 생산성 증대, 고객 서비스 강화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성장 핵심기지는 한국, 기술개발·생산 거점 강화
LG의 투자 선언은 급변하는 미래 산업 선제 대응 외에도 한국 시장이 갖는 가치를 재차 확인시켰다는 의미도 있다. LG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거점과 연구시설을 북미, 중남미,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핵심 R&D센터와 프리미엄 제품 생산은 여전히 국내에 거점을 두고 있다. 실제 LG전자의 주력 제품인 올레드TV 개발과 생산은 구미공장이 담당하고, LG에너지솔루션 역시 핵심 배터리는 오창공장에서 주력으로 생산한다.
이번 투자는 단순히 국내 연구·생산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차원을 넘어 LG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기지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공급망 대응 등을 위해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최첨단 고부가 제품생산과 연구개발 핵심기지인 한국의 투자 없이는 기업 전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10조원 이상 투입되는 배터리·소재 영역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공장을 통해 미래 경쟁력으로 꼽히는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LG화학 역시 배터리 소재 육성을 위한 구미 양극재 공장 건설에 나서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구광모 회장 과감한 결단, 혁신 속도 빨라진다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2019년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 이후 처음 가진 사장단 워크숍에서 밝힌 경영 방침이다. 이번 투자 역시 과감하고 신속한 구 회장의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 구 회장은 취임 후 실용주의 철학을 근간으로 가능성 있는 사업은 과감하게 투자하되 성장 동력이 다한 것은 과감히 접는 '선택과 집중' 경영을 실천해 왔다. 2019년 LG디스플레이 조명용 유기발광다오드(OLED) 사업을 시작으로 LG화학 CD용 편광판 사업, LG전자 스마트폰·태양광 사업까지 적자 늪에 빠지거나 성장 잠재력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청산했다. 지난해는 그룹 계열 분리로 전자, 통신,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시너지 창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구조 합리화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미래사업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LG 혁신작업은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LG는 30일 LG전자 HE사업본부를 시작으로 LG유플러스,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별 전략보고회를 실시한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진과 중장기 사업전략을 논의하고 미래 준비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번에 발표한 투자 관련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면밀한 이행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LG 관계자는 “올해 전략보고회에서도 이번 투자 관련 이행전략 등 세밀한 점검과 당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단순히 선언적인 투자를 넘어 기업 경쟁력 강화와 산업 기여 등을 고려한 진정성 있는 계획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