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후공정(OSAT)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수요급증으로 반도체 패키징과 검사에 이르는 후공정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 공정에서 완성된 반도체를 조립하고 포장하는 단순 제조를 넘어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새로 각광받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다르게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이다. 후공정도 반도체 성능을 올리고 생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동철 하나마이크론 대표는 “우리나라도 대만과 같은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TSMC가 생산한다. TSMC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다. 대만 팹리스, 후공정 업체와 협력해 다양한 반도체를 만들고 성능을 높인 양산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 대표는 “시스템 반도체는 협력 생태계 없이는 성장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한 결과,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시장에선 미국, 대만, 중국 등에 뒤져있다.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시장은 폭풍 성장을 예고했다. 삼성전자도 이에 맞춰 파운드리 세계 1위에 도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 대표도 국내 파운드리 시장 성장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파운드리 업체가 이끄는 하나의 생태계 내 후공정 업체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 반도체에 후공정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게 위기 극복 열쇠이자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바라보는 반도체 산업과 앞으로 후공정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대담=장지영 소재부품부 부국장
-회사는 업력 21년 반도체 후공정 기업이다. 설립 당시 후공정 산업은 어땠나. 지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반도체 후공정 산업은 기술 난도가 낮은 로(Low) 테크로 취급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성장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전공정부터 포장하고 검사하는 후공정까지 일괄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메모리로 돈을 벌고 기술과 인력 양성도 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후공정은 반도체 일부 단순 제조 공정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에 적용 제품이 늘고, 고가 반도체 장비 없이도 후공정에서 제품 성능을 올릴 수 있게 되면서 후공정 기술이 주목받게 됐다. 반도체 크기 축소, 집적도 향상, 가격 경쟁력 강화 등 반도체 후공정이 하나의 산업으로 주목받는다. 반도체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후공정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서두르고 있다.
-후공정 국내 대표 기업이 됐다.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하나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동반 성장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후 공정을 모두 다뤄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이다. 후공정을 분리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삼성, SK하이닉스는 D램, 낸드 패키징, 테스트 등 후공정을 직접 하고 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국내 후공정 업계도 외주 방식으로 일부 물량을 받아 테스트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은 비메모리에서 테스트 물량을 늘리면서 시스템 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하나마이크론 매출은 70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무선통신 반도체 등 사업 확장으로 시스템 반도체 매출 비중이 절반까지 늘어났다. 하나마이크론 창업주인 최창호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후공정 업체 가운데 연구소가 있는 것은 하나마이크론이 유일하다. 후공정 기술 개발에 대한 차별화 포인트는 고객 주문을 늘리는 계기가 됐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메모리 반도체 대규모 물량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성사된 건가.
▲하나마이크론은 삼성전자에 후공정 AP 테스트 물량을 늘리고 있다. 그러다 작년 기회가 찾아왔다. 하나마이크론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자한 베트남 공장이 빛을 발했다. 회사가 베트남 진출을 결정한 건 수익성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물량이 늘어났지만 가격 경쟁력 강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국내외 거래처들에 반도체 공급을 위한 문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객사에 대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지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대응 차원에서 반도체 물량을 맡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유럽 팹리스에 지문 인식 스마트 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 제품 생산도 확대되고 있다. 국내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베트남 인건비를 활용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팹리스 고객사의 물량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후공정 기술 개발과 상생 협력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일부 물량을 공급 받아 검사하고 있다. 반도체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 차원에서 공존 의식이 필요하다. 하나마이크론은 고객사가 믿고 맡긴 공정에서 차질 없이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자체 생산성을 향상해 보다 빨리 제품을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협력사에 후공정 일감뿐 아니라 기술 개발, 기술 보완 등 협력을 강화해 후공정 업계의 경쟁력 높여야 한다. 반도체 제조사가 후공정 업체에 기술을 지도하고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어렵다.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생산 체제다. 대응 전략이 있다면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와 완전히 다르다. 시스템 반도체 대응 전략은 품질과 기술 혁신에 맞춰 있다.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기는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인 팹리스로부터 시스템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등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 기업과 경쟁하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적용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후공정 업체 육성 차원에서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성장에 대응해야 한다.
-후공정 산업에서 대만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양국의 후공정 산업을 비교한다면
▲대만은 반도체 강국이다. 한국은 메모리부터 시작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했다. 대만 TSMC를 맹추격하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후공정 업체 입장에서 파운드리 시장 성장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후공정 업체간 영역이 분명히 나눠졌다. 시스템 반도체 품목이 많아 후공정 업체의 사업 확장 가능성도 높다. 대만은 현재 TSMC를 필두로 글로벌 10위권에 팹리스가 대거 포진하면서 튼튼한 생태계를 형성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대만을 쫓아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국내 대기업이 후공정 육성 차원에서 이끌어주면 좋겠다. 지금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함께 성장한다는 차원에서 후공정 업계를 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공정 업계에서 인수합병(M&A) 사례도 나오고 있는데
▲우리도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파운드리는 메모리와 다르게 자율적 분업화가 가능하다. 대만, 중국 후공정 업체들이 M&A를 통해 후공정 대형 업체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만 ASE는 자국의 SPIL을 인수하고 선진 기술을 흡수하며 후공정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중국 JCET는 싱가포르 스태츠칩팩을 사들여 몸집을 불리고 세계 4위 업체로 도약했다. 한국의 후공정 업체는 메모리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향후 후공정 기술 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메모리 의존도를 줄이고 사업을 고도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후공정 전기단자(범프) 개발 등 수직 계열화 시너지를 내면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후공정 최대 무기는 인력이다. 후공정 분야 인력 양성에 필요한 점은
▲반도체 후공정은 융·복합 산업이다. 반도체 패키지는 저항에 따라 열이 나는지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반도체 성능 저하를 막기 위해 발열 문제를 살펴야 한다. 후공정 전문 인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한국 마이크로 전자패키징 학회가 있다.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 교수진 등 전문 인력이 모였다. 후공정 분야에서 인력 양성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후공정 산업으로 올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반도체 소재, 기계, 소프트웨어 등 후공정 분야에서 복합 인재가 필요하다. 정부도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후공정 인력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새 정부가 반도체 육성 정책 적극 펴고 있다. 바라는 점은.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나눠 봐줬으면 좋겠다. 메모리는 대기업이 자생력을 가졌으니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다양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파운드리 집중 육성과 병행해 팹리스를 키우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국내 팹리스가 경쟁력을 갖추면 후공정도 자연히 강해진다. 대만과 같이 반도체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대만은 정부 주도로 매년 1만명의 신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한다. 최근 1년 사이 주요 대학이 반도체 학과 개설했고 매년 2회 신입생 선발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를 한국의 국가 프로젝트로 확대해야 한다.
○이동철 하나마이크론 대표는…
이동철 하나마이크론 대표는 1962년생으로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하나마이크론 대표 취임 이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메모리사업부 기술기획팀장, 일본 삼성 반도체 사업부장, 삼성SDI 기획팀장을 거친 반도체 분야 전문가다. 삼성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사업 기획을 짜고 일본 시장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다. 2019년 3월 하나마이크론 대표로 취임했다. 하나마이크론에서 반도체 사업 노하우를 후공정 산업에 녹여서 반도체 후공정 산업에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대표 후공정 세계 11위 업체로 시스템 반도체 상위 업체 도약을 위해 팹리스 고객사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