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K배터리가 지금까지 성공한 이유는 시장 선점을 위한 빠른 연구개발과 적극적인 설비 투자일 것이다.

이 같은 K배터리 성장의 이면에는 수많은 중소 규모 배터리셀 제조업체들의 노력과 희생도 있었다. 시장이 커지고 규모의 경제가 되면서 많은 중소 배터리 셀 제조기업이 사라졌지만 이를 통해 습득한 노하우는 현재 K-배터리의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 폐배터리나 중고배터리 등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재사용의 경제성 측면이다. 통상 신품 대비 75% 정도의 잔존 수명이 남은 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재사용한 다음에 폐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자원재활용 측면이다. 최근에 각종 원자재 가격 폭등과 함께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원재료가 유한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다. 이에 향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배터리 응용 제품(전기차·ESS 등)에 대한 원활한 수급을 위해 적정 성능별로 응용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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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에너지 밀도 기준으로 가장 좋은 상태의 것은 항공기나 차량 등에 적용하고, 그다음은 골프카트나 지게차·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나의 배터리를 잔존 수명에 따라 두세 번을 재사용하게 되면 굳이 비싼 새 배터리를 덜 생산해도 되는 효과가 생긴다. 당연히 수명을 다한 것은 리사이클링을 통해 주요 물질들을 회수하는 선순환 체계를 갖춤으로써 알뜰한 자원재활용도 가능해진다.

사용 후 배터리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품 배터리와 달리 사용 후 배터리는 전지 제조사가 품질을 보증하기가 곤란하다. 신품 상태 이후에 차량에서 사용된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그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다. 이러한 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적 데이터, 다른 하나는 동적 데이터이다. 정적 데이터는 신품 배터리 셀의 특성 정보와 배터리팩의 배터리관리시스템(BMS) 프로토콜이다. 동적 데이터는 차량에서 운행되는 동안의 축적된 '이력데이터'를 뜻한다. 이 가운데에서 배터리의 BMS 프로토콜 정보는 배터리를 검사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다. BMS 프로토콜이 공개되는 않으면 일일이 셀과 모듈에 새로운 BMS를 연결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 있다. 이 작업이 시간과 비용 상승을 초래해 결국 사용 후 배터리의 최대 장점인 경제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 밖에 배터리셀의 특성 정보와 운행 동안의 누적 이력 데이터는 노화를 측정해서 잔존가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가 없으면 배터리를 탈거한 상태에서 비싼 충·방전기를 이용해 통상 하루가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검사를 해야 한다. 경제성과 정확성에서 누적 이력 데이터를 통한 방식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이렇듯 사용 후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데이터에 있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 수집과 이용에 대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소극적이다. 개인 정보 등 중요 정보 누설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초기 시장에서 AS 시장까지의 독과점을 염두에 둔 포석인 측면이 더욱 크다.

이러한 상황을 수 차례 걸쳐 정부 유관 부서에 제언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반영은 상당히 더딘 편이다.

올해 환경부가 보조금 대상 차량에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데이터 공개를 요청하기 시작했는데 그 항목을 따져 보면 데이터 공개를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전기차의 배터리 관련 데이터는 전기차 제조사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타는 소비자들이 편리한 서비스(정비·보험·중고차·충전 등)를 받기 위해서도 전기차 관련 데이터는 공개돼야 한다.

전기차 제조와 보급정책에 우리나라보다 앞선 중국의 경우 전기차 관련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정부가 지정하는 곳에 업로드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산업군에 대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배터리 셀 분야에서 경쟁력을 역전당했던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터리 관련 데이터가 합리적으로 공개되길 바란다.

박재홍 한국전기차산업협회 회장 jh.park@pmgro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