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참여 사전기획부터 설계까지 10개월
교실과 운동장 잇는 데크, 다락방, 미끄럼틀
교실 내외부를 모두 활용, 교육과정도 재설계
그린스마트미래학교 롤 모델로 전국에서 주목
인구 1000명이 채 되지 않은 전북 남원시 덕과면.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국내 첫 미래형 학교공간혁신 모델이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통창과 나무데크를 통해 실내외를 넘나들 수 있는 교실, 미끄럼틀이 연결된 다락방, 때로는 놀이공간으로 때로는 발표공간으로 변신하는 도서관, 스마트 수업 환경…. 도시와 농산어촌을 포함해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학교가 탄생했다. 교도소와 같은 구조라는 오명을 들어온 학교 건물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 학교다.
덕과초는 정부가 2018년부터 추진했던 학교공간혁신 성과로서 첫 문을 연 사례다. 학생·교사인 사용자가 직접 기획에 참여해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환경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학생 수에 따라 면적과 높이, 구조까지 획일적으로 규정된 기존 학교 공사 규제를 혁신해 시작할 수 있었다. 칠판 앞에서 교사가 판서를 하며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을 잘 감시할 수 있게 복도에서 일렬로 교실이 늘어선 형태가 과거 학교의 모습이다. 혹자는 이를 교도소와 같은 구조라면서 이러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를 키울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달 초 준공한 덕과초는 교실과 운동장의 경계를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형태로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다. 학교에서 마치 캠핑을 하는 느낌이 드는 환경에, 놀이와 학습의 공간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수업을 하다 통창을 열고 바로 바깥으로 나가 야외 수업을 할 수도 있다. 학교는 드론을 날리는 등의 야외 수업도 기획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은 1인 1태블릿PC를 받아 수업시간에도 자유자재로 정보를 찾고 실시간 퀴즈도 풀어본다. 지난 13일 6학년 학생들은 정부와 국회 역할에 대한 퀴즈를 풀면서 토론을 하기도 했고, 2학년 학생들은 지리에 대해 배우면서 바로 위성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다.
덕과초등학교는 2020년 설계부터 시작해 이달 초에야 비로소 준공됐다. 연면적 994㎡에 불과한 작은 시골 학교 건물 공사가 2년여가 걸린 이유는 설계부터 학생 눈높이에 맞춰 혁신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설계를 맡은 박기우 건축가는 2020년 초부터 학생들과 설계를 위한 사전기획 수업만 20주를 진행하며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다락방'이나 계단 도서관과 같은 설계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산속의 펜션같은 삼각형 지붕을 가진 것도 아이들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학교의 일반적인 시설 공사에서는 꿈꾸기 힘든 현실이다.
박기우 원광대 교수는 “학교 시설 사업은 예산과 공기 모든 측면에서 다른 건축에 비해 열악해 건축가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면서 “이 사업에서는 1년을 사전기획가로서 초등학생들과 수업하며 아이들의 세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반영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수십년된 건물은 갈라지고 라돈까지 검출돼 재건축을 시작한 학교지만, 새단장을 하면서 어느새 지역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77만평 정도의 산업단지가 인근에 조성되면서 인구유입도 예상했지만, 벌써 2명이 덕과초 소문을 듣고 전학을 왔다. 이제 22명이 된 작은 시골학교지만, 책을 읽고 뛰어놀고 첨단 기기를 활용하는 최고의 환경을 자랑하는 학교가 됐다. 2020년부터 시작한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롤모델로도 주목을 받는다.
최근 전학을 온 6학년 장희락 학생은 “교실에서 따뜻한 추억이 많이 쌓일 것 같아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원(전북)=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