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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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작년 4월 미국 타임지 표지에는 '기후가 전부다'(Climate Is Everything)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함께 성냥개비 5만개로 세계지도를 만든 뒤 불을 붙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게재했다. 말레이시아 예술가 홍이(Hong Yi)의 작품이다. 작가는 “기후변화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성냥개비 세계지도 작품을 구상했다”면서 “한 곳이 영향을 받으면 전체 지역이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강조한 메시지처럼 전 세계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15년 12월 파리협정 이후 136개국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핵심기술 선정과 투자계획을 마련하는 등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9월 탄소중립 기본법을 제정하고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정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 기간산업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원료 사용으로 인해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된다는 점이다.

각 산업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해서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원유 등에서 추출되는 원료를 친환경 재료로 대체해서 생산 공정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효율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원과 원료의 대체 및 생산성 향상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기간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감축전략을 바탕으로 정부와 산·학·연 모두가 합심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부문을 포괄하는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했다. 올해 3월에는 과기정통부에서 탄소중립 기술혁신 로드맵을 발표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탄소중립 R&D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는 이 시점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목적 중심 실증형 R&D를 해야 한다. 탄소중립 R&D는 기초기술 확보만으로는 탄소배출 저감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연구개발 결과를 현장에 적용해서 실제 탄소배출량이 감소돼야 한다. 실험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생산시설 수준까지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생산시설을 확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둘째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통합형 R&D 방식이 필요하다. 대·중·소 등 기업 규모와 산·학·연 등 기관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각 밸류체인 최고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드림팀을 구성해야 한다. 업종별 드림팀 실패와 성공사례, 연구경험과 연구개발 성과물을 서로 공유해서 R&D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기존 국가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무탄소·저탄소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병행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지나친 규제 중심 탄소배출 저감 정책은 기업의 생산 활동 위축,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Carbon leakage·기업이 세금 회피와 비용 절감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나라나 장소로 이전), 고용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탄소중립 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선진국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핵심 기술을 도출하고 기술개발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어느 국가에서도 상용화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때 정부는 신속한 R&D 투자, 제도 개선, 세제 혜택으로 기업이 적극적으로 탄소중립에 동참하도록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탄소중립 핵심기술 조기 개발은 신산업 창출과 시장 선점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탄소중립은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전환이 필요한, 쉽지 않은 길이다. 달성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쭈물댈 수 없다. 이제는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서 이행해야 할 시기다. '불타는 세계지도'는 생각보다 더 가깝게 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yhchung@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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