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보고서 쓰다 날샌다”

'실적쌓기' 행정에 전담인력 부담
과제 의존 '좀비 기업' 부작용도
성장에 초점을…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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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정부 지원 사업용 보고서 작업을 위해 전담 인력을 채용했습니다.”(기업용 서비스형소프트웨어 스타트업 A대표) “정부 과제는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맞춰 진행하지 않으면 지원금이 회수되기 때문에 출시하지도 않을 시제품을 개발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스타트업의 생명인 유연성을 잃고, 피벗(사업 아이템 바꾸기)도 늦어집니다.”(임팩트 스타트업 B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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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한 정부 지원 사업이 과중한 보고서 부담과 사업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스타트업 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다. '보고서 허들'이 정부 과제에만 의존하는 '좀비 스타트업'을 걸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기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스타트업이 인건비 부담에도 정부 지원사업 서류 전담 인력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 C대표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전체 직원 24명 가운데 3명을 배치했다”며 “보고서 제출을 앞둔 약 1개월은 개발자도 보고서 작성에 집중, 절반 이상의 인력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사업은 매출이 없어서 투자 유치가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사업비 집행보고·중간보고·최종보고·사후보고 등 보고 절차와 30쪽이 넘는 보고서 작성이 큰 부담이다. 스타트업 실사업 추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B2B테크 스타트업 D대표는 “사람을 따로 뽑아야 할 정도로 페이퍼워크가 과도해서 사업에 방해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 솔루션 스타트업 E대표 역시 “정부 지원사업은 유용하지만 정부 과제를 하면 정작 사업 추진이 늦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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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과제가 스타트업의 강점인 유연성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B대표는 “피벗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도 증빙 요건 때문에 사업을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원금 용도에서 인건비 비중을 제한한 데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A대표는 “부담이 가장 큰 인건비 용도로 지원금을 100% 사용하지 못하는 사업이 대다수”라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외주 용역을 하고, 외주사의 결과물도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B대표는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스타트업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기후테크 스타트업 F대표는 “'좀비기업'일수록 보고서에 집중하기 때문에 걸러 내기 어렵다”며 “사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행정 편의를 벗어나 수요자인 스타트업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성민 벤처창업학회장(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은 “담당 공무원은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문서화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목표가 스타트업 성공에 있는 만큼 '수요자 마인드'를 갖고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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