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안 조항 하나하나가 다 사람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은 절규에 가까웠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CJ ENM 이한빛 PD의 죽음은 한국 노동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산업계가 기억해야 할 무겁고도 슬픈 이름이다. 그러나 이름과 죽음의 이유조차 남기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는 노동자가 있다. 배달 라이더이다.
최근 배달업이 성장하면서 라이더 업계 종사자는 폭증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퀵서비스 업종 사망자는 2016년 대비 지난해 2배 이상 늘었다. 배달 라이더의 안전을 위해 정부는 소화물공제조합 설립을 공표했다. 최근 조합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라이더 안전문화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정부는 인증제를 통해 안전 사항을 준수한 배달업체만 소화물공제조합 가입을 가능하도록 설정해 안전 문화 정착이 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합은 라이더에게 유상운송 보험료를 15% 할인해 주고 안전교육과 안전용품 공동구매도 지원한다. 하지만 인증제 기준이 낮고 보험 가입의 강제성이 약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유상운송용 책임보험은 시중에서 평균적으로 200만원에 판매돼 15%를 할인해도 170만원에 달한다. 20만원 수준인 가정용 책임보험에 비해 고가다. 보험 문제는 종사자 가입률을 올리는 게 핵심인데 실효성 있는 가격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업계와 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유상운송용 보험 가입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은 안전 문화 정착을 무력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관계법으로,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되는 라이더에 사업장 의무가 세밀하게 부과되지 않는다. 라이더 인증제가 고개를 드는 이유다. 업계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해 배달업체가 라이더의 산재보험과 유상운송 보험 가입 여부, 교육 이수 여부 등을 확인한 뒤 라이더 자격증을 부여하는 등 개별 라이더 인증을 진행함이 업체 인증보다 실효성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달업체에 개별 라이더 인증 책임을 부여하면 업체는 중대재해 처벌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고 발생 시 안전교육 미이수자, 유상운송 보험 미가입자 등을 확인하지 않고 운행하도록 했다는 데서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처벌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업체는 안전교육 및 안전성 확인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신논현역에서 배달의민족 라이더가 사망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배민 측은 “이전부터 라이더 안전 관련 배달문화 조성을 위해 선도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적용해서 운영하고 있다”며 “추가 안전 정책 마련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처벌법이 있어도 대상이 아니고, 이미 안전 배달문화를 조성했으니 추가적인 노력을 굳이 하지 않는다. 이는 배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어느 라이더의 죽음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휘발된다. 정부가 현장 상황에 맞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