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자구노력과 국가차원 지역소멸 극복방안 만나야 문제 해소될 것
기술·인재·금융 등 혁신의 3요소를 제공하는 통합형 거버넌스 구축해야
금오공대의 강점은 '스피드'...4차산업혁명 이끄는 수요자 맞춤 교육 추진
저출산의 그림자가 지방에는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과의 불균형, 인재 유출, 산업쇠퇴 등 지방은 현재 심각한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지역 혁신기관과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긴 어려운 실정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차기 정부 역시 지방소멸과 지방 대학 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책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린다. 정원미달로 인한 지방 대학 위기는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기 때문에 정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전국 지자체와 지방 대학이 지역 혁신기관과 손잡고 스스로 해법 찾기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국립 금오공과대학교(금오공대)가 최근 구미상공회의소와 함께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상생 비전공유회'라는 의미 있는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곽호상 금오공대 총장을 만나 지역소멸과 지방 대학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지방 국립대로서 현재 지방 대학 위기 현주소를 어떻게 보는가.
▲지방 대학 위기 출발점은 인구감소다. 여기에 수도권 집중이라는 문제가 더해졌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26만명인데 현재 대학 정원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20년 뒤에는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만 채울 수 있는 숫자다. 지방 대학 입학자원은 없는 셈이다. 26만명 가운데 적절한 고등교육 진학률은 30~40%라고 본다. 그러면 10만명뿐인데 이 숫자로 현재의 대학을 절대로 유지할 수 없다.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어젠다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어젠다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20년 이후를 대비해 지금 인재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초·중·고와 입시에 치중돼 있었고, 고등교육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우리나라 1인당 교육 투자비가 OECD 대비 3분의 2 수준이고, 고등교육 투자비는 초·중·고 1인 교육 투자비보다 낮은 게 문제다. '20만명 정병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출생아의 70% 수준인 20만 명을 인재로 키워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 70%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는 것이 사회적 낭비”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70%가 대학을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70%를 제대로 된 인재로 양성하지 못한 대학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대학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대학이 본질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동안 대학이 사회적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학 스스로 반성하고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가 교육재정을 늘려 투자하더라도 지방 대학 위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세계 일류대학이 되려면 그들을 단순히 따라 해선 답이 없다. 그들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일을 했는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오공대가 재정구조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있는 것은 공대라는 특화된 분야에다 조직이 슬림하고 의사결정이 빠르기 때문이다.
지역소멸 이슈와 관련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인데 중소기업에서 인력을 뽑으려면 사람이 없다. 그나마 지방에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곳은 대학과 연구소 정도뿐이다.
-지역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지방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사실 대학만의 노력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고등교육 구조개혁과 재정확충 등 국가 차원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어려우니 도와달라”라는 읍소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래지향적인 대학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국책사업을 통한 단기적 재정보완은 미봉책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역혁신 주체로 대학이 자리매김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지역 신산업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학사조직으로 전환하고 지역 중견·중소기업을 위한 선행기술 연구소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며 기술사업화와 창업을 통해 지역 생태계 고도화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 지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 혁신기관이 지역에 맞는 발전방안을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해 새로운 블루오션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의 자구노력과 국가 차원 지역소멸 극복방안이 만나야 대학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상생 비전공유회'도 그런 의미에서 마련됐다고 보는데요.
▲지역 위기와 지역대학 위기는 뿌리도 같고 해결방안도 다르지 않다. 지역 위기 극복을 위해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 지역 대학 및 기업, 혁신기관들이 기울인 노력과 투자가 부족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서로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주고받았던 협력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 지역 대학이 위기에 대응하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과 절박함을 나누는 진정한 상생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번 비전공유회는 대학 입장에서 비전과 전략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대학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함께 하는 내일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자리였다. 금오공대가 처음으로 캠퍼스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경제인을 대표하는 구미상공회의소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위기 극복을 위해 지자체와 지역 혁신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자체와 혁신기관이 맡아왔던 기본적인 역할과 임무를 다시 정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분절적으로 이루어졌던 공급자 중심 지원과 기관 이기주의를 지양하고 실질적 혁신이 가능한 수요자 중심 상생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기술과 인재를 공급하는 대학과 연구소의 지식 생태계, 사업화와 창업을 촉진하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비즈니스 생태계, 종합적인 지역발전을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지자체가 손을 잡고 혁신 3요소인 기술, 인재, 금융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통합형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 중심역할을 한 구미지역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은 '지역산업의 회생과 재도약'이라고 본다. 지역혁신 통합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 제조산업 혁신체계를 정비하고 지역산업 대전환 R&D 프로젝트로 신산업을 개척하며 미래산업이 요구하는 전문인재 양성과 복합적 정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재생산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금오공대의 강점은 무엇이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우리 대학의 최대 강점은 '스피드(속도)'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웃풋(산출물)의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누가 새로운 비전으로 먼저 이동하느냐에 승부수가 있다.
우리 대학은 공학계열이고, 실용적이며 단일화돼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스피드를 낼수 있는 강력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미래교육혁신본부도 출범시켰다. 융합단과대학과 첨단학과와 같은 미래형 혁신교육을 내재화하기 위한 학사조직과 교육과정 만들고, 미래형 교수학습을 제도화해 교육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또 기존 학생처를 학생성공처로 개편해 입학에서 취업까지 학생별로 자신의 진로 계획에 맞게 역량을 기르는 경력개발 체계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 28㎓ 5G+ 네트워크 테스트베드 구축, 독자적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인공지능학과 스마트공장 및 스마트 모빌리티 전공을 개설했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분야 교육, 연구 및 산학협력을 선도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변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수요자 맞춤형 교육에 한발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학생들이 보유한 역량에 따라 진로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종합대학은 하기 힘든 우리 대학만의 강점이자 경쟁력이다.
-지방 위기 극복과 관련해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가 마주한 지역 위기, 지역 대학 위기는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대학 고유 교육과 연구 기능은 물론 지역산업의 미래를 여는 싱크탱크나 중소기업 연구소, 지역협력 거버넌스에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 역시 지방 대학이 체계를 잡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고등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 고등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키워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지방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곽호상 총장은
지난해 11월 제8대 금오공대 총장에 취임했다.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서울 보성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말부터 1994년 말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설계본부에서 일했다. 이후 일본 우주과학연구소 우주환경연구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센터에서 근무하고, 2000년 금오공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금오공대에서 지난 20여년간 입학관리본부장, 산학협력단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곽 총장은 총장 취임 당시 '미래로 도약하는 강한 금오공대'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주목받는 대학' '앞서가는 대학' '백년 가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미=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