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라는 디지털 10대 어젠다] 중기 성장 사다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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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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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전체 기업의 99%, 전체 기업 종사자의 83%를 중소기업이 차지한다는 의미다. 숫자가 보여주듯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버팀목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 수는 99%지만 전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채 안 되는 48%에 그친다. 이익 비중은 더 낮다. 매출과 이익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졌고, 이로 인해 종업원 임금과 복지도 차이가 크다. 균형이 무너지면서 대기업으로는 인재가 몰리는 반면,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겪는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경제 버팀목이 무너진다.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해소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갖추는 것이 첫 단추다.

◇중기 성장 위해 규제 유연화해야

중소기업계가 윤석열 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은 노동규제 개선이다. 선거 직후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중소기업 정책 공약 중 중점 추진해야 할 과제로 '주52시간제·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규제 개선'이 49%로 첫 손에 꼽혔다. 핵심은 주 52시간제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취지는 살리면서, 중소기업 환경에 맞게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뿌리산업 등 노동 집약적인 산업일수록 고충이 많다. 원청 기업의 주문량이나 납기일에 따라 작업량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인력을 여유 있게 확보해 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매년 급증하는 특별연장근로 신청건수와 인가현황으로 알 수 있다. 법 시행 2년째인 2019년 966건 신청에 908건 인가였는데, 2021년에는 7185건 신청에 6477건 인가로 폭증했다.

윤 당선인도 중소기업의 요청에 부응해 공약에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반영했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고, 연간 단위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등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최근 윤 당선인과 경제 6단체장의 오찬 자리에서도 경제 단체장들은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포함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했다.

◇양극화 해소 절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도 중요 과제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기업 매출을 보면 대기업 52%, 중소기업 48%로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은 전체 0.3%인 대기업이 57%를 차지하고 99%인 중소기업은 25%에 불과했다. 평균 임금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면서 중소기업에 젊은 인재가 유입되지 않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지는 양상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만날 때마다, 지난 21일 당선인과의 오찬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가장 먼저 요청했다. 힘의 균형추가 기운 상황에서 중소기업 노력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갑인 대기업과 을인 중소기업의 관계를 떠나 제도적 보호 기반이 있어야 한다.

공약에 담긴 양극화 해소 방안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검토'와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설치'다. 납품단가연동제는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변화를 자동 반영하는 것으로, 대-중소기업 양자 간 계약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제도다. 대통령 직속으로 상생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소기업계를 대표할 인물을 위원장으로 세우겠다는 약속도 중소기업계 기대가 크다.

◇가업승계 지원 확대해 영속성 키워야

국내 중소기업계가 당면한 현안 중 하나는 가업승계다. 국내 중소기업 중 대표가 70세 이상인 법인이 1만개가 넘는다. 또 대표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비율은 2010년 13%에서 2019년에는 26.2%로 급증했다. 창업자들의 고령화로 가업승계 수요가 높지만, 엄격한 요건과 높은 세금 등으로 승계에 어려움이 많다.

중소기업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시각 때문에 제도 활용에 제약이 많다. 하지만 기업의 승계가 막히면 기업 운영이 어려워지고, 임직원 일자리도 담보할 수 없다. 다음 세대로 기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매각이나 청산을 택하는 곳도 많다. 기업의 영속성, 나아가 경제의 영속성을 위해서라도 가업승계 지원을 현실에 맞게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 당선인은 공약에서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사후관리 의무기간, 사후요건 등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업종 변경 제한을 폐지하고, 사후관리 기한도 현행(7년)보다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의 계획적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사전 증여제도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중소기업계가 원하는 많은 부분이 윤 당선인 공약에 담긴 만큼 공약을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가 관건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새 정부에서 현장과 소통을 강화해 노동규제 개선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고용과 성장의 중심이 되는 중소기업 성장시대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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