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간 연구개발 지원, 조세감면이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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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국립대구과학관장

내 돈을 나를 위해 쓸 때 가장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집을 살 경우를 보자. 집의 입지·크기·방향·모양, 현재 가격과 미래 가격, 학군, 편의시설 등 모든 것을 따져 보고 사게 된다.

반대로 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선물이나 기념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물을 사는 사람은 10만원을 쓰지만 받는 사람은 대부분 10만원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버리는 선물도 많다. 그래서 과거 어느 장관은 선물이나 기념품을 '거대한 낭비'라고 표현했지만 그래도 선물이나 기념품은 순기능이 있다.

이제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쓰는 경우를 보자. 남의 돈을 나를 위해 쓰면 횡령이나 뇌물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그러면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경우는 어떨까? 그 대표적인 예가 예산, 바로 세금을 징수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제도로 예산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나를 위해 내 돈을 쓰는 경우에 비길 수는 없다. 그래서 가능한 한 세금은 적게 거두고 기업과 가계가 스스로 자기 돈을 쓰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예산은 2017년 19조5000억원에서 2022년 29조8000억원으로 5년 동안 5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정부 예산도 50% 이상 증가해 국가채무비율이 36.0%에서 50.4%로 급등한 상황에서 차기 정부는 지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차기 정부가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2020년 4.81%로 세계 2위이고, 정부예산 대비 연구개발 예산이 4.9%인 상황에서 연구개발 예산을 크게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이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 국방·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그 중요성과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어 연구개발 투자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개발 예산 확대는 어렵고 연구개발 투자 수요는 커지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연구개발 예산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밖에 없다.

2020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예산 집행액은 23조9000억원인데 기업에 6조2000억원, 대학에 5조8000억원, 정부출연연구기관에 8조7000억원, 기타 국공립연구소 등에 3조3000억원을 지원했다.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국공립연구소는 연구개발 재원의 대부분을 정부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개발 투자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 지원을 줄이는 근본적인 정책의 선회가 필요하다. 즉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원칙을 '예산 지원은 줄이고 조세 감면을 확대'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면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 투자는 오히려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테면 '기업이 나를 위한 내 돈의 사용을 늘리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정책은 반대 길을 걸어 왔다.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 지원은 2015년 4조원에서 2020년 6조2000억원으로 50% 이상 증가한 반면에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조세 감면은 같은 기간 3조2500억원에서 3조400억원으로 줄었다. 이 기간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49조6600억원에서 71조4900억원으로 증가하였으므로 투자 대비 조세감면율은 6.5%에서 4.25%로 낮아졌다.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대기업의 경우 당기분은 2013년 3∼6%에서 2018년 0∼2%, 증가분은 2007년 50%에서 2018년 25%로 계속 낮아져(중견·중기업의 경우도 낮아짐) 연구개발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 지원을 줄이거나 동결하고, 이에 따른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기초과학, 우주개발, 보건의료, 기후변화 대응 등 민간기업이 담당하기 어려워서 정부가 지원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 집중 지원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연구개발 투자 수요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비의 직접 지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8년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정부연구 개발 수혜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비수혜 기업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의 돈으로 내 일을 할 경우의 비효율성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김주한 한국기술경영교육연구원장 jkim11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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