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 제분 업계와 가공식품사들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긴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원맥(빻지 않은 밀)의 경우 지난해부터 가격이 요동치다 올해 완만한 흐름으로 전망됐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급격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러한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제분사들의 공급가 인상으로 라면, 과자, 빵 등 가공식품 가격이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간거래(B2B) 밀가루 공급가격을 한 차례 인상한 제분업계는 최근 원맥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추가 가격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제분업계는 국제 원맥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자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거래처별 공급가 인상을 단행했다.
올해 국제 밀 시세가 안정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러시아 발 사태로 3월 원맥가가 급등했고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될 조짐도 보인다.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밀 선물 가격(달러/톤)은 지난 17일 기준 전일 대비 2.7% 상승한 403.44달러로 거래됐다. 이는 전월 평균 296달러 대비 36% 올랐고 작년 평균가(258달러)보다 56% 오른 수치다.
유럽 곡물시장 전략연구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으로 세계 수출시장에서 작년과 올해 생산된 밀 공급량이 약 1100만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미국기후예측센터(US Climate Prediction Center)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오는 6월까지 미국 대부분의 평야에 가뭄이 지속돼 겨울 밀 생산 전망도 불투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 식량 및 사료 가격이 최대 2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엔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막시모 토레로 수석 경제분석가는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의 식량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기초 곡물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가장 충격이 덜한 시나리오 상으로도 밀 가격은 8.7% 인상될 것이며, 충격이 심한 시나리오의 경우 최대 21.5%까지도 인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국내에서도 올 하반기 밀가루 가격 조정이 이뤄진다면 가공식품 가격 추가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 원맥 B2B 거래의 경우 3~9개월 계약 기간을 두는데 원맥 가격이 안정화되지 않는다면 밀가루 공급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 제분업계 관계자는 “올해 원맥 가격 오름세가 완만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러시아 전쟁 영향으로 상승세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연초 세운 원가 계획은 대부분 무산됐고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가격 조정은 불가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 추가 가격 조정이 예상된다”면서 “최근 국제 곡물가 상승세는 바잉파워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밀가루 가격이 인상되면 라면, 빵, 과자 등 식품 가격 인상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식품사들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소매가격을 일제히 올린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햄버거, 피자, 치킨 등 외식 물가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