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과기계 기관장 물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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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인사 얘기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을 위한 발걸음을 이제 막 뗀 가운데 전국 곳곳의 기관장 거취가 불안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불거지는 '물갈이' 얘기다. 마냥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구상에 발맞춰 줄 이를 기용하는 것이다. 향후 정책 수행과 공약 달성에 도움이 된다. 다만 '전 정권 지우기' 식의 물갈이는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지양돼야 한다.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초에는 출연연 기관장의 임기와 상관없이 '일괄 사표'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고, 사표는 대거 수리됐다. 전 정권 임명 기관장과 기관에 대한 감사도 거듭됐다. 지금까지도 기억될 정도로 큰 파문이 일었고,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관련 사례가 이어졌다.

구태와는 이별할 것으로 여겼던 현 정부도 다름없었다. 과기계에서도 이른바 '친박' 인사가 대거 찍혀 나갔다. 이들을 대상으로 '표적 감사'로 보이는 행태도 많았다. 수많은 이가 직을 버렸고, 끝내 남은 이들은 쥐 죽은 듯 지냈다. 거듭돼선 안 되는 일이다. 흔히 과학기술은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안배로 인사를 비롯한 기관의 앞날을 정한다면 참된 과학기술 발전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기관 운영도 여타 분야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분류한다.

연구개발(R&D)은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는다. 임기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관장은 단기 성과 창출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중장기 원천 연구, 더 먼 미래를 내다본 기획이 싹틀 여지가 사라진다. 무리한 감사, 사임 요구는 기관장 개인은 물론 조직 전반을 위축시킨다. 사임 후에는 새로운 기관장이 오기까지 내부 업무 공백과 혼란도 야기된다. 이달 마무리되는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박원석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사례부터 이목을 끈다. 이들은 중장기 R&D 강화를 취지로 개정된 법률에 따라 평가받았고, 연임 조건을 충족시켰다.

물론 조건 충족이 연임 확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반대 목소리도 있다. 연임 대신 공모가 이뤄질 수 있다. 다만 관련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문제다. 통상 출연연 기관장 선임 관련 논의는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시작된다. 결과 향방에 따라 과기계에 대한 물갈이 시작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과기 분야를 다루는 기자로서 두 번째 새 정부를 맞는다. 이번 정부는 전과 같을까, 다를까. 지켜볼 일이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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