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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였다. 수사를 위해 다양한 기법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 회계분석수사를 만들었고, 디지털포렌식을 도입해 검찰 수사기법 증진에도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을 비롯한 검찰개혁 과정에선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2년 임기를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을 맡았다. 퇴임 후 모교인 고려대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하던 문 전 총장을 서울 서초구 전자신문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시대 변화에 맞는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국민이 생활 속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 전 총장과 일문일답.

대담=이경민 정치국제부장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을 지냈다. 소회는.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렸고, 그 자리 무게만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검찰총장이 되기 전까지 개인적 친분은 없었다. 만나본 적도 없다.

-차기 정부가 시작되면 검찰개혁 또는 위상에서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우선 검찰개혁을 왜 하는지가 중요하다. 개혁은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검찰개혁을 하는 이유가 뭔가. 민주주의를 위한 일 아닌가. 누구 원한을 푼다, 아니면 여기가 힘이 세다, 이런 의미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1987년 이전과 이후, 우리가 지금 누리는 현재 헌법이 만들어진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그전 헌법은 그 자체부터 권위주의적인 헌법이었다. 1987년 이후로 지금 헌법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싹 지웠다. 그야말로 수평적 민주주의가 완성돼 있다. 그 헌법을 손대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불편함은 있을 수 있다. 정치권력 구조 때문인데 그 당시 반성하는 의미에서 (바뀌어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란 굳이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절차다. 프로세스. 민주주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법이라는 것은 다수 사람이 바꿔버릴 수도 있지만 헌법은 만들었다는 것은 헌법 안에서 법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검찰개혁도 적법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검찰이라는 제도가 민주적 절차에서 어긋나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거다. 이 절차는 따지지 않고 검찰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뭘해야 한다고 주장은 하는데, 왜 하는지는 모르는 거다. 검찰개혁을 왜 하는지 알려면 적법 절차, 민주적 절차, 특히 형사사법 분야부터 논의해야 한다. 이를 생략하고 검찰개혁만 논의하는 것은 목표없이 그냥 구호만 떠드는 거다. 목적지 없이 집 밖으로 나온 꼴이 되는 셈이다.

-검찰총장 재직 시 공수처와 관련해 갈등이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개혁을 왜 하는지가 중요한 거다. 민주적 절차에 비춰볼 때 우리의 형사법 절차에서 민주적 절차는 이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공수처만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목표 의식이 없는 거다. 내가 가는 종착지가 어디인지 모르고 중간에 버스를 타냐, 택시를 타냐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바꾼다고 다 개혁은 아니다. 민주적 절차에 맞느냐 안 맞느냐 이것부터 확인하고, 맞게 만들면 개혁이고 안 맞게 만들면 개악인거다. 지금 형사사법의 민주적 절차가 맞느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세계적으로 형사사법 체계를 보면 검찰이 수사지휘를 많이하면 할수록 직접수사 영역은 좁아든다. 직접수사를 많이하면 수사지휘 영역이 줄어드는 거다. 예전에는 판사가 수사 시작부터 기소와 판결, 집행까지 모두 주재했다. 그런데 수사를 자기들이 다 못하니까 경찰을 시켜서 했다. 프랑스가 대혁명을 하면서 검찰이라는 제도를 만들고 경찰과 법원 사이에 검찰을 끼워넣었다. 수사와 기소, 재판, 집행이라는 절차 중 어느 한 집단이 모두 독점하지 못하게 균형을 맞춘 셈이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 과정에서 전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작한 사람은 종결을 짓지 못하게 한 거다. 종결하는 사람은 시작을 못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판사는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됐다. 프랑스는 수사를 경찰이 시작한다. 검찰은 안 한다. 검찰이 봤을 때 수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경찰한테 이야기한다. 이게 지휘다. 자꾸 기소독점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가 있는데 중국이다. 중국은 전체주의 국가다.

민주 국가에선 수사를 착수하는 사람은 기소를 못하게 하고 결정하는 사람은 착수를 못한다. 판사는 재판을 시작하지 못한다. 재판은 검사가 시작한다. 검사가 기소해야 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판사가 재판해서 판결이 나오면 집행은 교도관이 한다. 교도관은 당연히 집행 시작을 못한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고 집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민주적 절차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제도가 독일로 넘어가면서 변형이 생겼다. 독일도 처음에는 이 기조를 따르다가 불편하니 검사가 직접 수사하는 기능을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계속 넓어졌다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 제도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전해지고 거기서 또 변형돼서 들어온 셈이다. 개혁한다고 해서 그냥 개혁이 아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고 우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해야 한다.

-그래서 검찰개혁을 두고 갈등이 있었나.

▲의견이 달랐다. 반대하진 않았다. 위에 언급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 바꾼 것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 선이 없다.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고 그냥 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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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과는 친분이 있는데.

▲대통령이 되면 경찰과 검찰, 법원 등 사회 분야에서 민주적 절차를 찾아가는 과정, 지금껏 지속돼 온 정치적 구호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생활에서의 민주주의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약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통령이 훈령을 만들고 그에 따라 내무부령을 만들어서 전국 각지에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사회복지시설이라는 이름의 구금시설을 다 만들었다. 부랑자라는 명칭으로 신체를 구금했다. 헌법에서 말하는 신체의 자유를 억압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도 없이 경찰이 체포하고 구금할 수 있었다. 경찰이 많이 잡아다 구금할수록 나라는 수당을 줬다. 술먹고 비틀거리는 사람 잡아다가 넘기고, 가족은 이 사람이 어디를 갔는지도 모르고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게 생활 속 비민주주의다.

하지만 이제는 나라가 발전하고 사회가 이 정도 성숙했으면 우리 사회 구석구석, 각 분야에서 민주적 절차를 어떻게 확립해 갈 것인지 구체화해야 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나. 그 디테일이 절차다. 이제는 사회 각 분야에 민주적 절차를 심어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 같은 정치적 구호는 강했다.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등 생활로서의 민주주의는 약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다. 단적인 예로 우리 세대는 윗사람이 자연스럽게 개인 신상, 가족관계, 고향이나 결혼 여부 많이 물어봤다. 그게 자연스러웠고 안 물어보면 나한테 관심이 없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자라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거 물어보면 실례다. 이른바 '꼰대'다. 술 마실 때도 후배가 못 마시면 강권하지 않았나. 지금과 달랐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치는 잘 모르겠고 경제나 외교 같은 경우는 자기 인식을 좀 갖고 했으면 한다. 우리가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고 했으면 좋겠다. 구호로서 경제나 외교를 말하는 게 아니고 메타코그니션(초인지·인식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했으면 한다. 대선을 거치면서 구호부터 앞서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국민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

-대선 화두는 공정이었다. 사법 분야에서 공정은 어떠한 의미인가.

▲사법 분야 종사자가 가장 쉽게 일하는 방법은 한쪽 편을 드는 것이다. 판사나 검찰은 한쪽 편만 들면 일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국가에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중립을 지킨다는 뜻은 똑같은 기회를 주고 그 기회가 혹시 한쪽에 기울어졌나 항상 살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가끔 그게 안 지켜지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남이 봤을 때도 공정한지는 알 수 없는 거다. 만약 나쁜 마음을 먹고 공정하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을 만들 때는 천사가 그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악마가 운영해도 이 시스템, 제도, 절차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 절차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직 때 굵직한 사건을 많이 맡았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나는 검사가 뭐 이렇게 큰 사건을 했다고 자랑하는 거 안 좋아한다. 왜냐면 사회 악을 뿌리 뽑는다는 대의명분이 있지만 범죄자에게도 가족이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단죄를 받겠지만 가족까지 유탄을 맞는 거다. 그래서 검사가 '내가 멋있는 사건 처리했다' 이런 자랑하고 환호성을 받는 것는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는 울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사건 끝내고 잔치하듯 '한 건 해냈어'라고 회식을 과하게 하고 이러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쌓인 피로를 풀순 있겠지만. 난 그래서 항상 후배들에게 그런 것은 삼가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기억에 남는 사건은 있다. 평검사 때 변사체 부검영장을 보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그 기록을 본 경찰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거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결혼을 했는데 여자분이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니 남자가 밖에 나가서 애를 하나 데려왔다. 그렇게 세 식구 같이 살았는데 남자가 바람피고 집을 나가버렸다. 여자하고 아이만 두고. 여자는 자기 자식이라 생각하고 아이를 키웠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삐뚤어졌다. 여자가 혼자 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남긴 일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겨놓은 일기 같은 거다. 남편한테 자기가 아이를 못 낳아서 너무 미안한데, 당신이 그렇게 떠나버려 힘들다. 아이도 말을 듣지 않고 너무나 괴롭다. 혼자 죽으면 남은 아이는 어쩌나. 10년을 넘게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자기는 더 버틸 힘이 없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데 아이가 너무 걱정된다. 지금 상황이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혼자 남기냐. 그 여자분은 아이를 먼저 보내고 따라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았다. 많이 겪었던 고통이다. 편하게 세상을 떠나지 못했잖나. 우리나라 국민으로 태어났는데 사회가 그랬잖나. 인생 어차피 똑같이 태어나서 가는 건데, 편한 생활 한번 못해보고 가게 돼 너무 미안하고.

조선시대부터 정상적으로 돌아가시지 않은 분은 고을수령이 직접 나가서 변사체 검시를 했다. 그게 사실은 국민을 예우하는건데,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대로 충분히 확인했습니다'라고 예우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근데 그때 일이 있어서 나가보지를 못했다. 물론 가서 하는 일은 뻔하다. 그래도 가서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거를 하지 못했던 게 아직까지 항상 마음에 걸린다.

-과학수사, 검찰 디지털 활용에도 관심이 많다.

▲과학수사라는 용어는 맞지 않다고 본다. 일본이 포렌식(Forensic)을 과학수사로 번역을 했고 그게 국내로 들어왔는데 부정확한 용어다. 과학수사가 수사를 과학적으로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경제수사는 수사를 경제적으로 하는 것인가. 범죄수사는 범죄적으로 수사를 하나. 우리가 회계수사를 한다고 하면 회계분야를 수사한다는 말이지 않나. 포렌식은 수사기법이다. 쉽게 말해 물증중심수사라는 뜻이다. 용어부터 우리가 현상을 제대로 반영했으면 한다. 보다 객관적 방법, 물증 중심, 물증이 오염되지 않게 객관적 방식으로 취득하는 건데, 나는 수사방법에 디지털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정확하게는 디지털포렌식이다. 검찰에 있으면서 내가 수사 외로 '나 이거 진짜 잘했다'고 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회계수사를 할 때 회계분석수사를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디지털포렌식 분야를 만든건데 둘다 물증을 객관적 자료, 수사 증거자료를 취득하는 방법을 사람한테 추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료를 찾아내는 방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사실 회계분석수사는 해외에 없다. 우리나라만 있다. 2004년 대검찰청 과장할 때 회계부 수사팀을 만들고 그게 지금 엄청나게 커졌다. 이제는 거기 없이 수사를 못한다. 회계장부를 확보해서 쳐다봐도 모른다. 아는 사람만 알지. 강압적으로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 회계장부를 보고 허점을 찾아내다가 수사관도 회계장부를 많이 본 수사관이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아예 회계분야 전문가를 수사관으로 뽑자. 그 수사관들이 지금은 많이 양성됐다. 웬만한 회사는 문제가 있으면 다 밝혀낸다. 우리나라가 못하면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 낸다. 20년 가까이 됐고 노하우도 엄청 쌓였다. 디지털포렌식은 미국이 가장 먼저 했다. 우리는 바로 뒤를 따라갔고.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고, 미국에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정도. 그 외 나라보다는 확실히 앞서있다. 지워낸 데이터를 다 살려낸다. 조각난 데이터, 데이터가 변해가는 과정 말이다. 대표적으로 황우석 사태가 있다. 수사팀이 파일을 찾아내고 싹 다 복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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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교수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컴퓨터공학과다.

▲검찰총장 끝내고 법대로 갈 수가 없었다. 법학전문대학원도. 취업제한에 걸리잖나. 마침 디지털포렌식을 한 인연으로 컴퓨터공학과로 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법과 윤리 한 학기 강좌를 맡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게 결국 데이터 산업과 AI 시대라는 이야기인데,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문제인 거다. 그럼 이제 그 시대에 형사사법 분야는 AI에 의한 범죄나 데이터를 가공해서 생기는 범죄를 수사하는 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AI 기술과 데이터 산업 기술을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지, 수사의 도구로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보면 속도가 너무 빠르다. 빠른 속도를 막을 수는 없다. 따라가는 속도는 뒤처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기법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수사 역량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또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산업이 커져가는 데 검찰이 산업발전을 주저앉히면 안 되지 않나.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해커는 다 화이트해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해킹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뒤진 게 검찰이 해커 수사를 너무 일찍 했다는 얘기가 있다. 핵심 해커는 좀 키우고 했어야 했는데.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도 당연히 압력을 많이 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얼마 전 클라우드법이 통과됐다. 서버가 외국에 있어도 자기 나라에 요금을 내라는 얘기인데, 우리 서버가 자기네 나라 있어도 요금을 준다는 말도 된다. 상호주의다. 우리 입장에선 페이스북 서버가 미국에 있어서 우리가 수사를 위해 자료를 달라고 하려면 우리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사뿐만 아니라 모든 분쟁에서 통용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형사소송이나 분쟁 해결 절차에서 상호 디스커버리(증거개시)를 안 하다보니 국부 유출도 많다. 미국에서 우리 기업이 미국 기업과 분쟁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많다. 예전 통계를 비춰 얼추 계산하면 해마다 몇천억원이고 매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리=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을 지냈다. 2019년 7월 24일 2년 임기를 마친 뒤 퇴임했다.


광주제일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8기다. 연수원생 시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등과 함께 노태우 정부 대법원장 지명철회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키는 데 일조했다. 검사 임용 후에는 서울지검 부부장검사, 제주지검 부장검사,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과학수사2담당관, 수원지검 2차장, 인천지검 1차장 등을 지냈다. 검찰 내 특수통으로 분류된다.

모교인 고려대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지난달 변호사 개업을 신청했다. 2020년 12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이 후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자 전직 검찰총장들을 규합해 징계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주도하기도 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