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현재 진행형… 그깟 아이템에 왜?

게임내 편의 제공 역할에서 콘텐츠 참여 관문으로 변질
2030 분노에 정치권 관심…대선후보 앞다퉈 공약 반영
법제화 목소리 컸지만, 업계 '산업후퇴' 논리로 방어
게임사 매출타격 크지 않아 찻잔속 태풍 그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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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를 뒤흔든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소비자 주권을 상기시키고 정치권이 2030세대 유권자에게 관심을 두는 단초를 제공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양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작년 2월 메이플스토리 업데이트를 시발점으로 폭발한 민심은 여전히 성나있다. '그깟' 아이템 뽑기가 왜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지금까지 지속 중인지 배경과 이용자 감정을 알아야 이해가 된다.

◇배경은 쌓이고 또 쌓인 불만

돈을 써야지만 이길 수 있는 구조(PaytoWin)지만 돈을 쓴다고 확정적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가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가장 큰 원인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건 2015년 무렵부터다. 애니팡류, 블레이드류, 세븐나이츠류, 도탑전기류, 검과마법류를 거치면서 고도화된 수익모델(BM)에 피로감이 커졌다. 이후 넷마블 '리니지2 레볼루션'과 엔씨소프트 '리니지M'이 전무후무한 매출 기록을 세우면서 BM 성공방정식이 정립됐다.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퀀텀점프가 기업 과제가 됐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가로 게임을 평가하는 시대가 열렸다.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의 국면에서 산업 규모가 주류 방어논리를 이루는 웃지 못할 풍경도 자아냈다.

2010년대 후반 게임사는 이용자 콘텐츠 소모 속도를 늦추고자 업데이트를 수직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엔드 스펙을 올리는 방법이다. 대부분 게임이 이용자간 대결(PvP)이 엔드 콘텐츠인 탓에 상대보다 나은 세팅을 맞추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 선두 이용자가 엔드 스펙에 도달할 때 즈음 스펙 상한치를 올리길 반복했다. 부분 유료화 아이템이 편의성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 돌아가거나 가지 못하는' 관문 역할로 바뀐 것이다.

무과금 이용자뿐 아니라 과금 이용자에게도 끝없이 상승하는 스펙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상위 스펙을 맞추기 위한 파밍조차 '면접'이라고 불리는 스펙 허들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펙을 맞추면 얼마 뒤 업데이트로 기존 아이템을 버리고 다시 같은 '노동'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과금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적 방법이지만 돈을 쓴다고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없는데다가 어렵게 얻는다 하더라도 곧 하위 아이템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몇 번 경험 하다보니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리 만무했다. 강화, 조합 등 다양한 확률형 콘텐츠에서도 같은 악순환이 지속됐다.

게임사가 출시 전 으레 말하던 “무과금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이용자 시점에서 “플레이는 할 수 있지만 과금 이용자 쾌락을 위한 병풍이 될 것”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핵심은 신뢰도

불만이 목 끝까지 올라온 상태로 2021년이 시작됐다. 시작은 넷마블 '페이트 그랜드 오더'였다. 엄밀히 확률형아이템 자체에서 기인한 문제는 아니다. 무료 뽑기 기회를 주는 이벤트에서 문제가 발생해 게임 이용자가 집단행동 위력을 알게 된 사건이자 뒤에 벌어질 일련의 사건에 도화선이 됐다

페그오는 일본계 게임답게 뽑기 의존도가 높다. 이런 게임에서 신년을 맞이해 일정 기간 로그인만 하면 100회 이상 가챠를 돌릴 수 있는 21만원 상당 규모 재화를 배포하기로 예고했다. 이벤트는 시작 3일 만에 긴급 중단됐다. 넷마블은 의도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서 전달받아 급히 중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확하지 않은 단어들로 이용자 반발을 부추겼다. 이후 넷마블이 신규 이용자 대상 이벤트인데 기존 이용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벤트는 지난 3년간 매년 해왔던 이벤트로 기존 이용자도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해명을 들은 이용자는 마침내 폭발했다.

업계는 이용자가 공식카페에서 드러눕고 살짝 화제가 되고 말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평소 고분고분했던 이용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트럭시위라는 업계 초유의 행동을 결행했다. 권영식 대표가 사과문을 썼고 백영훈 부사장이 이용자 간담회장에 불려나가 청문회를 경험했다.

넷마블 페그오 사태는 게임 이용자에게 “거봐 우리도 목소리를 내면 되잖아. 우리 흑우(커뮤니티에서 호구를 지칭하는 단어) 아니야”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바통은 엔씨소프트가 받았다. H2 잠수함 너프(공지 없이 효과를 낮추는 패치) 의혹과 후속작 H3 출시 발표가 원인이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 특성상 선수 수집에 상당한 과금이 필요한데 이 가치를 전부 쓰레기통에 넣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리니지2M'에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허점을 이용한 상품을 선보였다. 과도한 사행성 유도로 일본에서 금지된 '컴플리트 가챠'와 유사한 방식의 무기 제작식을 업데이트했다. 자율규제는 유료로 구입하는 랜덤박스 확률 표기만 권고한다. 이것으로 다시 확률템을 만드는 시스템은 막지 못한다는 맹점을 이용했다. 리니지M 문양시스템 롤백과 보상과정에서 중·소과금 이용자는 물론 고과금 이용자까지 모두를 등 저버리는 실책도 저지른다.

엔씨소프트 특유 과금 구조 비판으로 이어졌다. 절대 충성층으로 여겨졌던 린저씨도 “우리는 사료만 주면 만족하는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엔씨소프트는 신작 '블소2'는 리니지M 형제 BM을 답습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기대 이하 성적을 거뒀다. 기록적인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사회적 공론화 방아쇠는 메이플스토리가 당겼다. 2월 18일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추가옵션 확률 균일화 패치를 테스트 서버 패치노트에 공지했다. 패치 전까지는 무기는 올스탯%와 데미지%, 방어구는 올스탯%와 점프력이 높은 확률로 같이 등장했으나 패치 이후 해당 현상이 사라졌다. 넥슨은 이를 '무작위'라고 표현했는데 확률을 조작한게 아니냐는 의심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았다. 마비노기, 엘소드 등 넥슨의 타 서비스 게임 이용자도 연대해 목소리를 냈다.

결국 큐브에서 특정 옵션 조합이 의도적으로 안 나오도록 설정된 것이 밝혀졌다. 페그오, 리니지 사태를 겪으며 떨어진 게임사 신뢰도에 방점을 찍었다. 지속 과금을 강제하는 콘텐츠에 확률을 조작했다는 점이 이용자 분노를 폭발시켰다. 사회적인 이슈로 발전했다.

고객에 제대로된 상품 정보를 고지하지 않고 실수라고 덮고 보상 재화로 입막음하던 지금까지 게임사 행태에 참고 참은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성난 민심에 그라비티, 스마일게이트, 데브시스터즈, 카카오게임즈, 시프트업 등이 운영, 내부비리, 부적절한 관행으로 비판받으며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시스템 개선, 이용자 목소리 확대, 대선 공약까지

게임사는 이용자 의견을 경청하는데 멈추지 않고 향후 업데이트나 밸러스 조정과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용자에게 방향성을 공유하는 등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자율규제 강화, 검증시스템 구축 등 글로벌 게임시장에서 가장 앞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일조했다. 넥슨은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 시스템 '넥슨 나우'를 구축했다. 게임 내 확률형 콘텐츠의 실제 적용 결과를 주기적으로 집계해 누구나 쉽게 조회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세계적으로 유일하다시피한 이용자 검증 시스템이다.

자율규제 강령도 강화했다. 강화형과 합성형 유료 아이템을 공개 범위에 포함했다. 강화하거나 합성하는 콘텐츠 비중과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캡슐형 아이템 확률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을 반영했다. 다만 확률 공개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이용자에게 여전히 비난 대상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W 출시를 앞두고 게임을 설명하기 보다는 '~을 하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넷마블도 '제2의 나라' 출시부터 과금 아이템 의존도를 낮추는 BM을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국내 게임사가 '순한 맛'을 지향하는 계기가 됐으나 과도하게 낮은 확률 설정은 여전하다는 한계를 보인다.

정치권은 관련 법안을 앞다퉈 내놔 이용자 호응을 이끌어 냈다. 한편으로 합법적 기업 활동을 법으로 규제 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대선 정국에도 영향을 줬다. 각 후보가 게임관련 입장과 공약을 만들고 소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게임 관련 입장을 내놓았다가 선대위를 다시 만들고 입장을 번복하는 등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규제가 풀리기 시작한 게임산업에 또 다시 규제 그림자가 드리우는 계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일부 인터넷 방송인이 지나친 확대해석과 짜집기 영상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행태는 게임사 입장에서 여러모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영향이 미비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카카오게임즈 '오딘'이 기존 BM가 큰 차이 없는 모습을 선보였음에도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3사 21년도 2분기 성적이 모두 전년도 동기 대비 저조했는데 확률형 아이템보다는 게임사 연봉 상승 경쟁 결과로 오른 인건비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한 몫한다.

비교 대상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역대급 성적을 거둔 2020년이라는 점과 확률형 아이템으로 가장 심한 홍역을 치른 엔씨소프트 매출이 변함없는 점 등이 이유다. 리니지M 매출은 2020년 1500억원에서 2021년 1300억원으로 줄었는데 이를 리니지2M이 상쇄했다. 확률형 아이템 반발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게임에서 발견되는 자연감소세로 이해하는 게 옳다는 분석이다.

◇향후 자율규제냐, 법제화냐

확률형아이템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확률형아이템 법제화 내용을 담은 게임법 전부개정안은 최근에서야 공청회를 가졌다.

업계는 게임법 전부개정안 발의 후 1년 넘게 시간을 끄는데 성공했다. 매서운 여론에 맞춤형 대응을 하고 신규 콘텐츠를 확충해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발화점이었던 메이플스토리는 전망을 웃도는 실적을 내며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법제화가 게임 산업 역동성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방어논리도 만들었다. NFT 게임 규제와 같은 실사례를 발굴했다. 확률형 아이템 대안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산업후퇴 우려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했다. 과도하게 꼬아놓은 시스템과 한정 아이템 남발을 먼저 수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는 이용자가 선호하지 않는 BM을 제거했다.

강신철 게임산업협회장은 “자율규제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사회적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용자와 국회,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를 원한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요원하다. 단순 확률 공개로는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기준 마련부터 골치 아픈 과제다. 이용자 감정만을 근거로 통과시키기에는 부담스런 측면이 존재한다.

김재현 문체부 콘텐츠 정책국장은 “협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부정적 의견이 있다”면서도 “이용자 권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전부개정안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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