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Carbon Neutrality)은 대기 중 온실가스 순 배출량 제로를 말한다. 인간 활동에 의한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이룰 때 달성된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있는 지구환경을 회복하고 미래세대에 그린에너지 공급을 담보하자는 혁신적 개념이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에서 시작한 탄소경제 체제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경제성장 이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해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인류사회는 지구환경 회복과 미래세대와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2016년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으로 이어졌다.
과거 탄소경제 기반 산업혁명 시대를 1기로 본다면 현재는 탄소중립에 기반을 둔 제2기 산업혁명 시대다. 탄소중립 시대는 우리 생활과 산업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탄소중립은 환경보호뿐만 아니라 수출중심 경제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탄소국경세 문제와 같은 국가 이익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정부의 혁신적 리더십과 스마트 소비자 의식, 친환경적 ESG 기업이라는 3각 체제가 필요하다. 3각 체제 속에서 미래세대와 공존할 수 있는 근본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온실가스는 대부분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나온다. 탄소중립은 화석연료 소비 감축에서 출발한다. 석유, 석탄, 가스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체재로 친환경·저탄소 에너지를 사용해야 탄소중립에 다가설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국가 실현을 목표로 세부 정책 수단과 이행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은 7억2800만톤이며, 이 가운데 전환(발전) 부문이 2억7000만톤(37%)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산업·수송부문 에너지 효율화 등을 감안하면 전기에너지 사용이 탄소 배출량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 소비의 메가 트렌드는 '화석 에너지 퇴조'와 '신재생에너지 기반 전기 소비의 급증'이 될 전망이다. 바꿔 말하면 생활은 물론 산업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가 '전기화(Electrification)'되고, 각종 에너지 소비 효율화는 전기 기준으로 파악되고 분석된다. 경제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신재생 기반 전기 에너지 공급과 사용이 대폭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전기 에너지 생산과 사용, 즉 전기 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 에너지로 전환은 보편적 이용성(Energy Equity), 공급 안정성(Energy Security), 친환경 지속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을 전제로 한다. 필연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급이나 전력망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 전력망 설비 확충과 관리 시스템 고도화, 전력망 스마트·디지털화 등 혁신적 변화가 필요한 배경이다. 결국 전기 에너지로 혁신적 전환을 완성하려면 세부 분야별 기술 개발 로드맵에 따라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세부적으로 먼저 기존 화력발전 대비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 확보가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용이 하락하면서 기존 화력발전 대비 경제성을 확보했다는 보고도 일부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부족하다.
신재생에너지 경제성 확보는 규모의 경제 실현과 더불어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로 확보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출력과 기술 특성을 면밀하게 고려한 균형적인 R&D, 변동성에 대응하는 기술도 요구된다.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Storage)'는 전략적으로 집중 투자해야 할 기술이다. 수요 측면에서 수송 부문 전기차 보급 확대, 에너지 효율화 사업, 그린수소 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다양한 설비 투자 등도 중요하다.
전력망 관점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는 전력 공급 불안정성과 대정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재생 전원의 변동성에 대응한 전력망 유연성 설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초고압직류송전(HVDC), 유연송전시스템(FACTS), 스마트그리드시스템 등을 고도화하고 적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국가 전력망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고도화도 필수다.
우리나라 전력망은 고립계통이어서 자체적으로 변동성을 흡수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전 세계는 역내 국가 간 전력망을 연계해 신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상쇄하고, 경제적 이익과 공급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북한 핵 폐기를 전제로 통일시대에 대비해 남북한·동북아 전력망 연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 달성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 형평성은 부인할 수는 없는 문제다.
서구 선진국은 수백 년에 걸친 긴 산업화로 누적 탄소 배출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지난 반세기의 짧은 기간 압축적 경제성장을 해 왔기에 당연히 누적 탄소 배출량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을 함께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화력발전소 점진적 폐지,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차 확대, 배출권 거래제 시행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가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냈고, 신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유연성 확보 등 17대 핵심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한발 더 나아가 '2050 탄소중립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로의 성공적 전환을 위한 보다 종합적인 R&D 로드맵과 단계적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기술개발 계획과 탄소중립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성공적으로 실행하면 탄소배출 Net-Zero라는 목표는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다.
명성호 한국전기연구원장 shmyung@keri.re.kr
<필자> 명성호 원장은 친환경 전기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KERI에서 38년간 근무하면서 '765kV 초고압 송전선로 상용화 기술', '송전선로 전자파 친환경 기술', '한국형 고속철도 전자파 대책 기술' 등을 개발했다.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신재생에너지 품질 향상 및 차세대 전력망 기술 개발을 총괄했다. KERI 전기환경송전연구그룹장, 차세대전력망연구본부장, 미래전략실장, 연구·시험부원장 등을 지내면서 원내 연구 역량 강화를 이끌었다. 대외적으로 △국제대전력망회의(CIGRE) 전기환경 부문 한국대표 △한국전력 열린경영위원 △한국에너지학회 이사 △대한전기협회 한국기술기준위 위원 △한국전기산업진흥회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