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그간 미뤄왔던 중고차 사업 진출 채비에 한창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경기 용인시와 전북 정읍시에 각각 자동차 매매업 등록을 신청했다. 사업 개시가 아니라 사업 개시를 위한 준비 절차인 만큼 중소벤처기업부의 사업 일시정지 권고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중소기업사업조정 시행세칙은 '피신청인은 일시정지 권고를 받은 이후에는 판매 물품 반입 등 사업의 개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를 중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규정상 등록한 부지에 판매할 중고차를 들이지 않는 한 현대기아가 정부 권고를 위반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권고를 위반했다 하더라도 중기부가 내릴 수 있는 조치는 언론이나 유관기관에 공표하는 것뿐이다. 공표 이후에야 조정심의회를 꾸려서 일시정지 이행명령을 내릴 지 여부를 심의·의결할 수 있다. 전자신문의 첫 보도로 이미 일시정지 권고 사실은 대중에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권고 위반에 따른 벌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다음 절차는 자율조정이다. 3년 가까이 평행선을 달렸던 양측이 사업조정 국면이라고 해서 달라질 리 없을 것이다. 결국 결정은 중기부가 위원장직을 맡는 사업조정심의위원회로 넘어갈 게 뻔하다.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온 순간 중기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하루라도 빨리 결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결정은 또다시 오는 3월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3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이 완성차 업계는 이미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여론은 이미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다. 외국계 완성차 업체가 이미 사업을 개시한 마당에 적합업종 지정을 강행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반발은 뻔하다. 미지정되더라도 소비자 편익을 무시하고 시간만 허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애초 중기부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자동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뒤집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중재는커녕 갈등만 키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중고차 시장뿐만 아니라 대리운전업, 유통업 전반으로 신기술로 무장한 기업이 전통 산업으로 진입하는 시대다. 중기부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혁신성장 역시 이끌어가야 할 부처다. 지금처럼 좌고우면해서는 부처로서 존재 이유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