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49)법치주의의 적(敵)은 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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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는 민주주의 정치가 쇠퇴하고 스파르타와의 오랜 싸움에 시달렸다. 그의 철학은 자각과 성찰을 강조, 적과 싸워야 하는 아테네의 단결에 기여했다. 그래서일까. 패전 이후 새로 들어선 정권은 혹세무민을 이유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렸다. 옛 정권이 만든 법에 따라 독배를 든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내가 지키자고 한 법이니 나도 따를 수밖에. '악법도 법이다'가 여기서 나온다. 그 좋던 법이 왜 악법이 됐을까. 어떤 법이 악법일까. 악법도 지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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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역사를 보자. 오락가락하는 사람을 믿지 말고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유럽은 영국 대헌장 등 귀족·부르주아 세력이 왕권 견제를 위해 법을 만들었다. 아시아는 백성을 농토에 묶어서 세금을 받고 군역·부역에 동원하는 등 부국강병을 위해 법을 이용했다. 지금은 민주주의다. 국가든 누구든 법적 근거 없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이달 1일 기준으로 법령은 법률 1554개, 대통령령 1819개, 총리령 93개, 부령 1299개 등 5121개(2020년 대비 152개 증가)다. 지방입법은 조례 9만9158개, 규칙 2만6296개 등 12만5897개다. 규제 사항이 많아 기업이 힘겨워하는 정부 고시(告示)를 더하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1988년 9월 1일 이후 헌법재판소 사건은 신청 4만4193건, 처리완료 4만 2728건이다. 그 가운데 위헌결정(헌법불합치 등 포함)은 1866건에 이른다.

법이 많으면 그만큼 자유와 권리가 제한된다. 법은 왜 늘까. 정부정책을 시행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악착같이 법을 만든다. 국회의원은 주 업무가 입법이다. 국민(특히 지역구민)의 요구사항을 모아 법을 만든다. 민간이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지표에도 입법 건수가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작정하고 법을 만든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은 토론·설득이 안 된다. 이전투구 끝에 법을 만들어서 해결한다. 신법을 만들어 구법의 힘을 빼기도 한다. 죽은 법을 살리는 국회의원도 있다. 지난 국회에서 입법되지 못한 법안을 찾아 살려낸다.

법이 많아지면 무엇이 문제일까. 법 집행을 위해 정부 재정을 축낸다. 세금을 더 거둬야 할 수 있다. 법률 간 모순·충돌이 발생할지 모른다. 대다수 행정법에는 '다른 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이 법이 우선'한다는 규정이 있다. 다른 법을 모두 찾아내기도 어렵고, 무엇이 특별한 지 헷갈린다. 부동산입법은 시장안정화를 꾀한다. 교육입법은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 그러면 서울 강남의 일반고 주변 부동산 값이 오른다. 법이 다른 법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법이 많으니 크든 작든 위반도 늘어난다. 죄 짓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없다. 법을 급하게 만들면 해석도 어렵다.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네거티브 입법을 한다는데 들여다보면 교묘한 포지티브 입법이다. 게다가 제재·처벌 조항이 부가되면 당혹스럽다. 새로운 산업·서비스가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부득이 규제샌드박스에 기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낡고 병든 법을 찾아서 없애는 국회의원을 높게 평가하자. 입법 건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자. 다른 해결 방법도 찾자.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분쟁, 원전 폐기물 분쟁, 모빌리티 분쟁 모두 검찰과 법원으로 달려갔다. 토론이 없고 양보가 없다. 고소·고발만 있다. 수사기관의 처분이나 법원 판결에도 수긍하지 못하고 마음엔 앙금이 남았다. 젊은 엄마가 아픈 아이를 태우고 급히 병원에 가다가 앞차를 들이받았다. 경미하지만 사고다. 앞차 피해자는 아이 엄마를 따뜻하게 안으며 배려했다. 법에 맡기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필자는 직업을 잃어도 좋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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