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비롯한 각종 공포정치로 대한민국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산업 측면에서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전자산업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컬러TV 방송을 전면 허용했다. 앞선 박정희 정권은 과소비를 조장하고 국민 계층 간 사회적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컬러TV 방송을 금지했었다.
1980년 12월 1일 오전 10시 30분 방영된 '제17회 수출의 날'이 국내 첫 컬러TV 방송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두환 씨는 컬러TV 방영에 적합한 밝은 회색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전두환 정권은 컬러TV 방송을 '총천연색' 대국민 홍보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 이른바 '땡전뉴스'가 대표적이다. 모든 방송사가 '땡'하고 정각을 알리는 시보가 울리면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이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뉴스를 전했다. 컬러TV 보급은 전두환 정권의 '3S(스크린·스포츠·섹스)' 정책을 확산하는 기폭제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컬러TV 보급은 역설적으로 한국 전자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이 됐다. 1970년대 말 불어닥친 세계 불황 여파로 침체기에 빠져있던 국내 전자기업들이 컬러TV 방송 허용에 따라 내수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들은 “컬러TV 방송이 몇 년만 빨랐어도 한국 전자산업이 몇 배 더 발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정권은 전자산업 고도화에도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과거 중화학공업을 앞세워 국력 강화를 꾀했던 박정희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성장 가능성과 육성 가치가 높은 전자산업을 진흥해 핵심 국가동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을 산업 전략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 출연 연구소를 앞세워 소재, 부품, 제품 등에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마련했다.
당시 금성사(현 LG전자), 삼성, 선경 등 주요 기업들은 이 같은 정부 기조에 따라 전자산업에 속속 뛰어들었다. 개인용 컴퓨터(PC), 전전자식 교환기(TDX-1), 광통신장비, 차량용 무선전화기(카폰) 등 다양한 제품을 국산화하면서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1983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단순히 조립만 하던 한국 전자산업이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 같은 기세를 이어 1984년 256K D램, 1986년 1메가비트(Mb) D램 개발에 잇달아 성공했다.
정부차원에선 국가 연구 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통·폐합 개편했다. 당시 통폐합 전략은 오늘날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초가 됐다.
5개 부처에 산재해 있던 19개 정부출연연구소는 1980년 과학기술처 산하기관으로 모였다. 1980년 가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경제분과가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연구개발 효율과 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 출연 이공계 연구기관을 통합·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