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로 쓰면 5년간 더 사용 가능
파쇄하는 재활용보다 비용 절감
중고-폐배터리 검증체계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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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현대차가 2017년 말부터 2020년 말까지 출시한 승용 전기차(코나 일렉트릭·아이오닉 일렉트릭)와 전기버스(일렉시티)에 들어간 배터리 전량을 폐기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8만1701대 분량으로 배터리 용량은 최소 5GWh에 달한다. 이는 2400가구(4인 기준)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당시 신품 배터리 기준 구매 비용만 1조원어치다.

화재 우려가 제기된 배터리인 만큼 배터리 전량 폐기는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와 관련 산업계는 재활용(Recycle)을 위한 배터리 파쇄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재사용(Reuse)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잇다. 앞으로 5년 후에 넘쳐날 전기차용 중고·폐배터리에 대한 재사용·재활용 등 후방산업을 지금부터 준비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본지가 폐기를 앞둔 배터리를 재사용했을 경우를 가정해 경제적, 산업적 가치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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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리콜 받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의 배터리 시스템.>

*용어 설명 : 배터리 재활용 vs 배터리 재사용

중고·폐배터리 재활용은 배터리를 파쇄(Spallation)한 후 각종 소재를 추출해 다시 배터리를 생산하는데 이 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 재활용을 통해 니켈·코발트·리튬 등 소재를 추출할 수 있다. 반면에 재사용은 중고·폐배터리를 파쇄하지 않고 배터리셀이나 모듈 형태를 유지한 채로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ESS 등으로 재사용한 후 충·방전 성능이 떨어지면 재활용을 통해 각종 소재를 추출할 수 있다.

◇재활용보다 가치 있는 재사용 배터리

지난 3월 현대차가 '코나 일렉트릭' 등 3개 차종, 8만1701대 배터리시스템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20여 차례 발생한 배터리 화재 사고 때문에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이들 차량에 탑재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셀이 들어간 시스템 전체를 교체하는 작업이다. 최초 차량 생산 시 배터리시스템 구매와 제작 비용은 약 1조원이다. 새 배터리시스템 교체 비용까지 합하면 최소 2조원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교체작업은 한국과 유럽, 미국 3곳에서 진행 중이다.

국내의 경우 현대차가 국내 리콜 물량 2만6699대분 배터리를 GS건설에 매각하기로 하고 재활용 처리를 앞두고 있다. GS건설이 현대차로부터 구매한 코나 전기차 배터리(용량 64㎾h)는 대당 40만원 수준으로 신품 가격에 5%도 안 되는 금액이다. 지난 2017년 당시 배터리셀 가격 등을 고려하면 배터리셀과 모듈·팩·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배터리시스템 제작 비용(대당 약 2000만원)과 비교하면 비용 손실이 적지 않다.

이에 업계는 이 배터리를 재활용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ESS 등 재사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순형 SG 대표는 “전 세계 배터리 관련 업계가 전기차 중고·폐배터리를 활용한 재사용 및 재활용 등 후방산업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배터리는 완성차 제조사가 보증하는 7년 이상 사용해도 충·방전율(SOC) 75% 이상 성능을 내기 때문에 현대차 코나 배터리 역시 ESS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배터리를 ESS로 활용하면 앞으로 5년간 ESS로 사용이 가능하며 이후에 재활용을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 리콜 물량(2만6699대분)의 배터리 용량은 약 1.6GW로 이를 ESS로 활용할 경우 새 배터리를 활용한 것보다 7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콜 받은 배터리 안전한가

리콜 받은 배터리를 ESS로 재사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검증이 가장 시급하다. 현재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법은 화재 위험성이 있는 배터리팩과 이미 훼손된 배터리팩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친 후 배터리 충·방전율(SOC)을 기존 90% 수준에서 70~80%로 낮춰 사용하는 것이 유력하다. 배터리 충·방전 사용에 따른 열 발생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의 물리적 용량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20~30%를 덜 사용하는 원리다. 실제 리콜 대상 차량의 SOC를 낮춘 이후 화재 등 사고가 크게 줄어든 사례가 많다.

또 ESS를 제작할 때 모듈 당 DC-컨버터를 적용한 저전압 운전을 통해 화재 위험을 막고 100㎾h당 별도 특수 방화벽을 설치해 특정 배터리팩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배터리팩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또 배터리 모듈 단위를 5~10㎾h 줄인다면 관리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화재 위험이 잔존한 배터리팩과 이미 망가진 팩을 선별하는 기술이나 인증이 국내에 아직 마련되지 않아 중고 팩 성능 및 안전성 검증을 위한 체계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증 체계가 마련된다면 4GWh 에너지양의 80% 이하로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다음 3GWh 총량으로 제한해 ESS로 활용하는 건 시도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에 배터리 등 관련 업계는 중고·폐배터리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국가 인증 체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콜 배터리뿐 아니라 앞으로 전기차용으로 수명이 다된 중고·폐배터리를 활용한 재사용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태양광·풍력 송전 문제 해결할 대안

최근까지 전국에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급증했지만 송전 설비 부족으로 무용지물이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ESS가 주목받고 있지만 고가 배터리 가격 탓에 실제 활용 사례는 많지 않다. 그래서 저가 중고·폐배터리 기반 ESS를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1MW 이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들 접속 대기 물량이 3931MW로 나타났다. 이는 원전 4기 규모에 해당한다. 태양광·풍력 등 발전소를 세웠지만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송전탑·송전선로를 구축하지 못해 생산된 전기가 버려지거나 발전소 구축에 차질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실제 전남 신안지역의 경우 이곳에서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원 중 송전이 가능한 용량은 0.6GW에 불과하다. 반면에 정부가 8.2GW급 신안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고 있어 천문학적인 송전 비용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과 수요지 간 송전을 위한 계통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8.2GW급 해상풍력의 전력을 도시로 송전하기 위해서는 최소 345kV급 송전선을 3개 라인을 구축해야만 가능하다. 고전압 송전선로 구축에 따른 지역 민원이나 공사비·기간 등을 감안한다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가운데 중고·폐배터리 기반 ESS를 활용하면 송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45kV급 송전선 등 송전시설 대신 기존 송전시설(154kV급)과 ESS를 동시에 활용하면 송전선을 신설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전력 생산 기복이 심한 태양광과 풍력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를 ESS에 저장했다가 송전량이 적은 시간대 저장된 전기를 송전하는 형태다. 최대 생산 피크에 맞춰 대용량의 송전시설을 구축하는 것보다 크게 효과적이다. 여기에 송전선로 구축을 위한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 지역 주민 반대도 피할 수 있다.

이 대표는 “폐배터리 ESS를 이용해 계통과 연계함으로써 기존 송전선 이용률을 최대 3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며 “비정상적인 계통문제가 발생할 때 ESS 설비가 계통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국가 전력망의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대차 전기차 배터리시스템 리콜 물량

【표】신강진→신안(70㎞) 간 345kV 송전선로 구축에 따른 비용 분석

[이슈분석]폐기 앞둔 8만대 '코나'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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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