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장 "디자인 주도 사회혁신, 현장에 답있다"

과거 심미적 요소에 치중됐던 디자인이 사회 현안 해결과 산업 혁신에 활용되면서 사회 곳곳에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전기사용량 월별 추이 확인이 가능한 그래프를 넣었더니 평균 10% 에너지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또 지방의 작은 시장에 예술가와 청년 상인을 유입시키고 주변 환경을 개선했더니 점포 매출이 평균 167%나 높아지기도 했다. 모두 '디자인 주도 혁신'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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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디자인진흥원 본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상흠 원장이 국내 산업 현황과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디자인 위상 제고 속에 산업 성숙도를 높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지난 6월 17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친환경, 디지털 전환 등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 속 디자인 역할도 재정립해야 하고, 개인 맞춤 디자인 시대에 산업계 대응도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확대된 디자인 역할에 맞춰 조직 경쟁력까지 키워야 한다. 책임은 무겁지만 확신은 있다. 약 30년간 공직생활을 거치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했던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홍기범 전자자동차부장

-취임 넉 달이 지났다. 평소 생각했던 디자인과 기관장으로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다.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취임 후 사업을 보고 받고, 현장을 방문하며 디자인이 우리 삶과 산업에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은 '제품 디자인' 영역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사회 문제 해결이나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등 다양한 영역에 녹아 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디자인을 바꿔서 에너지 절감을 유도하고, 공장 내 위험시설 안내 디자인을 개선해 안전사고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산 벽화마을은 인기에 비해 소음과 혼잡함을 겪어야 하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실제 혜택은 없었다. 향초 등 기념품 사업을 접목해 마을 소비를 활성화시킨 것 역시 디자인 혁신 사례다. 단순 기념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모델(BM) 전반을 디자인했다. 이런 다양한 역할 속에서 새로운 혁신 모델을 고민 중이다.

-국민은 물론 산업계도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디자인 주도 혁신(Design Driven Innovation)'의 시대다.

개인 취향이 강조되는 시대가 오면서 디자인 역할과 중요성은 더 커졌다. 가구, 가전은 물론 자동차까지 소비자 개인 취향이 반영된다.

또 디자인 수요는 사회문제 해결에도 나타난다. 2014년 산업디자인진흥법에서 서비스 디자인 분야가 명시되면서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디자인 역할이 확대된다. 최근 큰 이슈가 되는 안전 디자인의 경우 디자인 방법론으로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곳을 사전에 발견하고, 직관적인 사인물과 환경개선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처럼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 주도 사회혁신이다. 디자인 업계 역시 이러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을 기획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비즈니스 기회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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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디자인진흥원 본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상흠 원장이 국내 산업 현황과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디자인 위상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흥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디자인 역량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진흥원 기본 역할은 지속 수행해야 한다. 다만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미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단순히 제품 디자인과 같은 전통적 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에 흐르는 중요 어젠다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디자인을 접목해 어떤 혁신을 일으킬 것인지가 핵심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 가치로 떠오른 것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나 디지털 전환(DX), 탄소중립 등이다. 국민도 이런 가치를 중시해 기업을 평가하는데, 대기업은 그나마 대응할 여력이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은데, ESG나 디지털 전환에 '디자인 주도 혁신'을 지원할 방안을 만들고 있다. 이런 내용은 내년 정부와 함께 5년마다 발표하는 디자인종합계획에 담아 체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국민 정부 정책 중 개선할 점을 직접 제안하는 국민정책디자인단 사업도 충실히 수행해 서비스 디자인 혁신에도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취임사에서도 가장 강조한 게 '현장'이었고 평소에도 임직원에도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한다고 들었다.

▲29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게 평소 철학이다. 취임 후 현재까지 20여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방문하는 곳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을 포함해 정부기관 등 가리지 않고 있다.

디자인은 어느 한 곳만 잘한다고 잘 되지 않는다. 산·학·연·관이 하나의 목표의식으로 협업을 해야 경쟁력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이해 관계자 간 협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산·학·관이 모인 디자인위원회를 만들 계획이다.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으로 이어지게끔 돕는 게 우리 역할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한데 현장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소통이 중요하다. 디자인진흥원장 취임 후 생전 처음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중요 정책이나 현장 소통 결과, 언론 기사 등을 틈나는대로 올리고 있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중점 추진하려는 정책은 무엇인가.

▲현장을 둘러보면 경쟁력 있는 업체도 많지만 지원이 절실한 곳도 수두룩하다. 디자인 위상이 커졌다고 하지만 대부분 하청업체에 머물다보니 상당히 영세하다. 현재 진흥원에 등록된 디자인전문기업 절반 이상이 연매출 3억원 이하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기업의 디자인 투자가 줄었고, 이마저도 출혈경쟁으로 치닫다보니 수익성은 더 떨어진다. 스타 디자이너나 스타 기업이 배출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이 영세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가치를 제고하고 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 우선 디자인전문기업 자립화와 대형화를 위해 융자나 투자 등을 금융 지원을 늘릴 예정이다. 또 제조 기반이 없는 디자인 전문기업에 3D프린터, 후처리 장비, 온라인 플랫폼 등 제조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통채널도 지원할 계획이다. 여기에 디자인 개발 대가기준, 표준계약서 등 안전장치가 지켜지도록 정책지원과 함께 디자인법률자문단 등으로 분쟁 조정을 위한 사전지원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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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디자인진흥원 본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상흠 원장이 국내 산업 현황과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산업 육성, 사회 현안해결 등 당면한 과제 수행을 위해서 진흥원 규모와 예산 등도 늘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디자인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진흥원 예산과 인원을 늘리는 것은 필수다. 예산확충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관계 부처와 협업 기회를 모색 중이다.

디자인은 타 분야와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힘이 있다. 최근 각광받는 4차 산업혁명 유망 분야, 3대 신산업 분야, 한국판 뉴딜을 대표하는 분야와 협업해 외연 확장에 집중할 예정이다. 여기에 발맞춰 기관 인력증원도 진행 중이다. 현재 진흥원 정원은 129명인데, 최근 5년간 제자리였다. 전국 스마트산단 내 디자인주도 혁신센터 개소, 해외 거점 신설 등 향후 주요 사업과 연계해 인력증원을 도전적으로 추진하겠다.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에 맞춰 조직 체질도 바꿔나갈 예정이다. 설립 51년을 맞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업무가 있을 수 있다. 업무 전반을 점검하고 시스템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소통과 협력으로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 인력과 예산을 늘리고, 조직을 합리적으로 개편해 '제2 도약'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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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윤상흠 원장(왼쪽)과 홍기범 전자신문 전자자동차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디자인 산업에도 IT 바람이 거세다. 그 배경과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풍부한 인프라와 디자인이 융합하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며칠 전 대·중견기업 간담회에서 산업 흐름이 제조에서 서비스업, 그리고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플랫폼 성공 비결은 사용자 요구를 적극 반영해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데 있다. 진흥원은 스타일(패션·뷰티)과 ICT(인공지능, 가상현실·증강현실 등)를 접목한 '스타일테크' 산업을 키우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산업에서 디자인은 이종산업 간 융합을 촉진하는 연결 고리이자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이달 초 열린 국내 최대 디자인 축제 '디자인코리아 2021'에서도 스타일테크 대표 기업이 참가해 기술력을 뽐냈다. AI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패션과 화장품을 제안하거나 유망 디자이너가 자신의 제품을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플랫폼 등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디자인 역량과 IT 인프라는 향후 디자인 주도 산업혁신을 이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K-디자인'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이 영세하다고 했지만, 사실 내부 역량은 굉장히 뛰어나다. 올해 9월 기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디자인 출원 건수는 세계 1위다. 또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iF·레드닷·IDEA)에서 우리 기업의 수상 비율도 두 자릿 수를 기록 중이다.

결국 우수한 인력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공직에 있을 때 통상·무역 분야 업무를 오래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관과 현장에서 만나 디자인 시장개척단 파견 등을 논의 중이다. 여기에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 시장 진출도 지원하기 위해 현지 디자인 진흥기관과 협업도 모색 중이다. 진흥원 내부에서도 차세대 스타 디자인리더 양성 사업으로 우수 인력을 발굴·양성할 예정이며, IT를 활용해 국가 경계를 넘는 마케팅 접목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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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윤상흠 원장은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2년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2016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산업자원부 무역정책과장, 지식경제부 통상협력총괄과장을 거쳐 2014년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장을 역임했다. 이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총괄국장,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 무역위원회 무역조사실장을 요직을 거쳤다. 특히 무역정책과장 재임 시 우리나라 최초로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기여했다. 올해 6월 제17대 한국디자인진흥원장으로 취임한 후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으로 국내 디자인 산업 발전에 힘 쏟고 있다.

정리=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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