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로 리더십이 흔들렸던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 복귀 후에도 안정을 되찾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출소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재판과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비판에 '뉴 삼성'을 위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월 30일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17차 공판에 참석하면서 피고인 신분으로 100번째 재판을 마쳤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항소심과 상고심, 파기환송심 등을 거쳐 80여 차례나 법원에 출석했다. 이후 올해 4월부터는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공판이 진행되고 이달 12일에는 프로포폴 불법투약 첫 재판에도 출석했다.
프로포폴 불법투약 사건은 이르면 이달 중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만, 회계 부정 의혹 공판은 내년 초까지 매주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사법 리스크는 이 부회장 경영복귀 행보에 제동을 건다. 매주 재판 준비는 물론 참석까지 해야 해 부담이 크다. 또 현재 가석방 상태인 이 부회장은 법무부 보호관찰도 받고 있다. 주거 이전을 포함해 해외 출국에도 법무부 신고가 필요하다. 반도체 등 산적한 삼성전자 현안을 고려하면 글로벌 기업들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사법 리스크와 함께 시민단체의 지속되는 비판도 부담이다. 지난 8월 13일 이 부회장이 가석방 출소한 날에는 1056개 시민단체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특혜 가석방을 강행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어 지난 9월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7개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을 위반했다며 고발, 현재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 부회장이 무보수, 비상임, 미등기 임원 상태로 경영에 참여, 취업제한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 부회장 출소 두 달이 지났지만 공식 외부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유일한 외부 공식 활동은 지난달 14일 김부겸 국무총리와 회동이다. 이 활동 역시 청년 일자리를 주제로 한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여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이 부회장이 본격 경영 행보에 나서기 위해서는 사법 리스크 해소가 필수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마무리되는 한편 가석방 출소 신분이 갖는 여러 제약도 해소가 필요하다. 당초 주요 경제단체는 가석방이 아닌 사면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내년 7월 형 집행이 완료될 때까지 보호관찰과 5년간 취업제한 등 제약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면이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가석방이 결정된 상황에서 사면을 재차 요구한다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라면서 “현재 삼성의 글로벌 투자, 지배구조 개편 등 굵직한 사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빠른 시일 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한 제약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