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수확의 계절 가을이 왔다. 우리는 예로 한 해 동안 흘린 땀과 노력으로 빚은 농작물을 추수하면서 풍년가를 부르고 그 결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1년 내내 어두운 땅속에서 끊임없이 물과 영양분을 찾아 공급하는 '뿌리'의 역할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뿌리는 풍성한 곡식과 달콤한 과실과 달리 겉으로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 준수한 성과를 달성했다.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한 덕이다. 국가 경제 버팀목인 제조업에도 말 그대로 뿌리 역할을 하는 산업이 존재한다. 자원을 소재로, 소재를 부품으로 가공하는 기초 공정산업이 '뿌리산업'이다.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6대 뿌리기술이 주로 활용된다.

뿌리산업 기술 역량은 자동차, 반도체, 기계 등 국가 주력산업의 핵심 제품 시장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등도 깊숙이 연계돼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국내에는 약 3만개의 뿌리기업이 있다. 52만명에 달하는 종사자가 근무 중이다. 매출은 162조원, 수출액은 24조원 규모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다.

우리 뿌리기업들은 코로나19 장기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로 수요기업에 소재·부품을 납품해야 하는 뿌리기업은 후방산업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뿌리기술 관련 혁신 역량이 낮고 신규 거래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매출 10억원 미만 영세기업이 전체 뿌리기업 중 60%를 차지하고 있어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농작물은 잎이나 줄기가 상하면 영양분을 추가 공급하거나 가지치기 등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뿌리가 썩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고사한다. 정부는 뿌리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작년 7월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2011년 법 제정 이후 10년 만에 뿌리산업 진흥법을 전면 개정했다. 노동집약적·저부가가치 산업구조에서 미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뿌리산업 소재 범위를 금속 중심에서 플라스틱, 고무, 세라믹 등으로 확대했다. 뿌리기술 범위는 기존 6대 분야에서 3차원(D) 프린팅, 로봇, 센서와 같이 소재다원화·지능화 공정기술을 포함한 14대 분야로 확장하는 등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또 뿌리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부처 차원 지원으로 지속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국내 최고의 '뿌리기술연구소'와 정책 싱크탱크인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양대 축으로 하여 기존 6대 분야와 신규 8대 분야에 관한 기술 고도화 및 융합연구 개발·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지능형 뿌리공정 시스템 구축을 지원한 결과 현장 생산성 향상, 불량률 개선, 작업시간 단축 등 구체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9년간 38개 특화단지를 지정해 뿌리기업 집적화를 촉진하고 공동활용시설 등 인프라 구축을 지원 중이다.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한 기술 커넥트 활동 등 다양한 기업경쟁력 강화 사업도 지속 확대 중이다.

그동안 추진된 산·학·연·관의 다양한 노력과 이에 힘입어 발전하고 있는 뿌리산업의 미래상을 엿볼 수 있는 '2021 소부장뿌리기술대전'이 13일부터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3일간 개최된다. 뿌리기업뿐만 아니라 소부장 기업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력과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기업들의 고난과 역경이 곪지 않고 새싹으로 움트도록 힘찬 응원을 보낼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nklee@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