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반도체 기술 척도로 여겨진 '나노미터' 경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제조업체마다 공정이 상이하고, 실제 반도체 성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초미세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던 인텔이 경쟁사와의 비교를 피하고, 차별화를 위해 독자적인 기술명을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인텔이 발표한 공정 기술 로드맵에서 '7나노' '5나노' 등 나노미터(㎚) 단위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인텔은 '인텔 7' '인텔 3' '인텔 20A' 등 새로운 공정 기술 명칭을 활용했다.

인텔은 “공정 노드명(나노단위)은 업계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문제”라며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로 인텔도 공정 노드명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개선해야겠다고 인식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 통용하는 나노 단위 공정 기술은 트랜지스터 게이트 길이로 칩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1960년대부터 활용해왔지만, 최근 들어 실제 게이트 길이가 마케팅 용어로 사용하는 나노 단위와 차이가 있다는 게 인텔 설명이다.

실제 TSMC와 삼성전자, 그리고 인텔이 사용하는 나노 단위를 절대적 비교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TSMC의 7나노와 삼성전자의 7나노, 그리고 인텔의 7나노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나노 표기법 효용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MIT, 스탠포드대, UC버클리, TSMC 소속 컴퓨터 공학자 9명은 지난달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반도체 칩 성능 측정 척도로 '밀도 측정항목'을 제시하기도 했다. 로직 트랜지스터 밀도, 메인 메모리의 비트 밀도, 메인 메모리와 로직 간 연결 밀도 등 다양한 구성 요소로 칩 성능 지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텔이 갑작스레 표기법을 문제 삼은 데는 마케팅적 이유가 포함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인텔 역시 그동안 차세대 제품 개발을 소개할 때 나노미터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7나노 이하 공정 전환에 실패했고, 계속된 개발 지연에 연초 엔지니어 출신 팻 겔싱어 CEO가 선임됐다. 인텔은 이후 기술 중심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텔은 10나노 슈퍼핀펫을 끝으로 더이상 공정 기술에 '나노'를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0.1나노미터 단위인 '옹스트롬(A)'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2024년 적용할 '인텔 20A' 경우, 현재 통용되는 나노 단위 기준으로 약 2나노 공정 기술로 추정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