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3D 직종 근로자의 유쾌한 반란

Photo Image

게임업체에서 시작된 정보기술(IT) 인력의 연봉 인상은 네이버·카카오·쿠팡과 같은 플랫폼 업체로, SK를 비롯한 대기업으로 옮겨 가더니 지금은 IT 중소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3D 업종으로 분류돼 온 IT 업계의 저임금 인력들이 고임금 자리를 찾아 옮겨 가면서 '시대의 반란'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교통·교육·의료·금융·공공서비스의 모든 분야가 IT, 특히 소프트웨어(SW)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추이가 주목된다.

SW 기술이 우리 사회의 인프라인 금융·의료·교통·문화를 움직이는 핵심이다. 심지어 삼성, LG, SK가 수출하는 반도체·휴대폰·가전기기 성능이 SW에 의해 판가름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기술 패권 역시 그 중심에는 SW가 있다는 것도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SW 업종은 3D 대표 업종으로 분류돼 왔고, 일류대학 정보 관련 학과는 전문의대에 밀려 지원자가 매년 줄어 왔다. 이러한 IT 천대의 바탕에는 한국 사회의 IT 시스템 구축이 5~7년마다 한꺼번에 대규모 시스템을 갈아엎는 '차세대 시스템'과 '갑을병정정'으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 대부분 외주에 의존하는 '턴키방식' IT 시스템 구축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정부도 알고 있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도 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3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것은 모든 문제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문제가 얽히고설켜서 우리 사회가 도저히 풀 수 없던 이 문제가 갑자기 풀리기 시작하고 있다. 네카라쿠배라고 불리는,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등 게임업체로부터 시작된 급격한 임금 인상이 플랫폼 기업의 혁신과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존 산업보다 몇 배의 수익을 내는 카카오뱅크·토스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학벌이나 경력 및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기존 업체보다 30~50% 비싼 연봉으로 IT 인력을 채용하면서 대기업들이 IT 인력 연봉을 올리고 있고, 네카라쿠배 학원으로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정부가 SW중심대학, 링크사업단, ITRC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대학에 주고 끝임없이 격려해도 정원을 채우기 힘들던 일류대학의 정보 관련 학과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하고, '대졸 초임 5000만원'으로 학생들을 유혹하는 지라시까지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다.

이제 IT 인력들의 유쾌한 반란이 일고 있다. 기존 IT 업체에도 이직 바람과 연봉 인상의 바람이 거세다. 업력 22년 차인 마크애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한 해 30명이던 이직자(총원 170명)가 올 상반기에만 34명(총원 200명)으로 늘었고, 하반기에는 또 다른 이직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발주기관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갑질에도 밤샘과 주말 작업을 계속해 온 IT 인력들이 실력순으로 기존 IT 업체를 떠나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차세대 시스템 구축에 많은 차질이 예상되는 이유다. 이미 결정된 예산의 인건비를 올릴 수도 없고 실력 있는 개발자가 빠져나간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임금 IT 인력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IT 강국'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이 구축한 교통·금융·의료·교육의 거대한 인프라를 움직이고 있는 SW를 누가, 어떻게 유지하고 개선할 것인가.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이사 juchoi@markany.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