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 동안은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 역사에 오래 기억될 만하다. 지난 2019년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원자재 수급 불안 및 해외 공장 봉쇄에 따라 세계적으로 '제조업 공급망을 다시 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다양한 특단 대책이 유례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그동안 특정 국가에 의존하던 핵심 기술을 이 기간 내재화·국산화에 역량을 집중했다. 수입처를 다변화, 공급망 안정 유지에도 힘썼다. 수요·공급 기업 간 활발한 협력이 일도록 여건을 제공하고, 연구소와 대학 같은 든든한 기술 지원군 형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K-소부장이 2년 만에 일궈낸 성과는 절대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부장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31.4%에서 24.9%로 감소했다. 공급 기업의 기술·부품 검증을 위해 수요 기업이 생산설비를 개방한 사례도 80건 이상이다. 중소기업 위주 부품 기업의 수요 대기업 생산 라인 공유는 이전까진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도 2019년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48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소부장 분야 핵심 장비 구축을 비롯해 기업 신뢰성·실증 지원, 인력 양성 등에 나서고 있다.
우선 공공연구소에 시험·평가용 연구 장비를 대거 구축했다. 해당 장비들은 기업이 성능 평가나 시제품을 제작할 때 필요한 품목이다. 기업이 치러야 하는 장비 사용료도 할인 혜택을 적용했다. 신소재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도록 디지털 시뮬레이션 개발 플랫폼도 지원했다. 그동안 123개 기업이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재직자 대상으로는 맞춤형 기술 교육을 개설하고, 석·박사급 연구 인력을 기업에 파견해 기술 자문에 응했다. 기업 기술의 애로 사항 해결을 돕는 전용 상담 창구를 마련하고, 신규 소재·부품의 성능 개선·평가에 수요·공급 기업의 공동 참여를 유도하는 상생 사업도 시작했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진행하고 있다. 제조 강국인 독일 현지에 한·독 소부장 기술협력센터를 구축, 소부장 분야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수요 기업과 국내 소부장 기업을 연결하는 국제 공동 연구개발(R&D) 사업도 신설했다.
K-소부장 생태계는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으로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그 덕에 체질을 개선하고 더 강해졌다. 마치 밀가루가 물을 만나면 처음에는 잘 섞이지 않고 끈적대지만 반죽하면 할수록 단단해지고 더욱 쫄깃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과 탄탄한 내공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정부와 소부장 업계의 1차 목표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경제 만들기, 위기에도 지속 가능한 생태계 만들기였다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는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기술적·산업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의 선도 기술을 확보해 주요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고리를 장악하는 것이다. K-소부장이 현재의 지속 가능성을 넘어 공급망 핵심 거점을 차지하는 대체 불가능성까지 갖춘다면 명실상부 글로벌 수준이라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부장 기업들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눈에 보이는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부장 산업은 성과 창출에 매우 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인내심을 발휘해서 끈기 있게 기다려 준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ycseok@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