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감소로 대학교육 질 저하·재정 위기 봉착
수도권 정원 감축 해법 제시에"미봉책 그칠 것" 의견
산업계·지자체 등 힘 모아 '고등교육 혁신' 서둘러야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학이 직격탄을 맞자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이 해법으로 떠올랐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수도권 대학에 적정 규모의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는 방향에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며 “체계적인 대학 관리 방안과 고등교육 혁신 방향을 이달 말까지 구체화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여 지방대학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단기적인 대안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수도권 대학들의 반발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또 전체 정원 규제로 이동을 막으려는 논의가 한창이지만, 한쪽에서는 반도체를 비롯해 미래유망산업을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각론 위주 정책은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다. 정원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출생율 추이로 본다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학령인구 감소가 10여년 후 다시 일어난다. 정원 감축만으로는 대학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원 조정으로 우선 살길을 찾는다고 해도 출생인원 45만명 안팎으로 소폭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는 10년 동안 고등교육 전반에 혁신이 없다면 대학의 미래는 없다. 뿐만 아니라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대학만이 아니라 지역 산업계, 지방자치단체 등 모든 구성원이 대학 혁신을 위해 나서야 할 시점이다.
◇10년동안 정원 감축…지방대·전문대만 급감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정원 미달은 20년 전부터 예고된 사태다. 올해 출생율이 떨어지면 19년 후 대학 입학자원이 감소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 2000년 출생자는 63만명에서 그 다음해인 2001년 55만명으로, 2002년에는 49만명으로 급감했다. 지방대와 전문대를 중심으로 한 미달 사태는 어김없이 일어났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학 정원 감축을 위한 정책을 펼친 것도 이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입학정원은 9만명이 줄었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쳐 입학정원은 2010년 57만1842명에서 48만1312명으로 줄었다.
문제는 정원 감축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일반대학 정원이 3만여명 줄어드는 동안 전문대학은 6만명이 줄었다. 일반대학은 10년동안 8.6% 정원이 줄었으나 전문대학은 26.9%가 감소했다.
일반대학 내에서도 불평등은 심화됐다. 수도권은 기회균등전형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원 외 모집을 꾸준히 늘려 이를 만회했다. 지난해 일반대학의 정원 외 모집은 서울지역에서 1만2926명, 경기 4771명 등 43%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교육통계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일반대학 입학자 수 감소는 지방에 집중됐다. 비수도권 대학은 2020년 전체 대학 입학자가 21만6179명으로 2010년보다 3만151명(12.2%)이 줄어드는 동안 수도권 대학은 1161명(0.9%)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전체 대학 입학자 감소분 3만여명 가운데 비수도권 대학 입학자 비율이 96%에 달했다.
정부가 인원 감축을 위해 구조개혁 사업을 추진하면서 평가에 기반해 정원을 줄인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 기간동안 정원 6만여명이 줄었는데 그 중 77%가 지방대에서 나왔다. 평가에 기반한 감축을 추진하다보니 충원율 감소-평가 점수 하락-인원 감축-재정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충원율이 낮은 대학은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정원을 감축해야 했다. 정원 감축으로 재정이 줄어들면서 교육 환경이 열악해지고 지원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지방대에서 반복됐다.
급기야 올해에는 대구대·원광대 같은 지역의 거점대학 역할을 하는 규모가 큰 사립대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나와 혼란에 빠졌다. 지방대에서는 장학금은 물론 에어팟·아이패드까지 동원해 신입생 확보에 나섰지만 효과가 없었다.
강원 지역 등 그나마 서울과 인접한 지역 대학들은 신입생 충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나 상당수 학생들은 편입이나 재수 등으로 빠져나갔다. 학령인구 급감은 전국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그에 따른 위기는 지방대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최근 수도권 대학이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지방대 몰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정원 감축이 답일까? 고등교육 질 제고 논의 실종
이번에 수도권 대학 정원을 감축한다고 대학 생태계 회복을 기대하긴 힘들다. 10여년 동안 40만명 후반대 출생자를 유지하다 2016년에는 40만명, 2017년 36만명, 2020년 27만명으로 다시 급감한다. 당장 전체 정원 감축으로 현재의 체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30% 이상을 또 다시 줄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고등교육 질 제고를 위한 노력 없는 정원 감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도권 대학 고통 분담에는 공감하면서 정원 감축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무엇보다 정원 감축으로 고등교육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입학정원을 유지하는 서울 소재 대학들도 재정난을 겪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금이 늘어났지만, 상당수는 국가장학금이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 중 하나인 A대학은 등록금 수입으로 교직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한다. 법인전입금을 비롯한 다른 수입으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시설 개보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정원 감축 위주의 대학 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원과 평가 연계도 새 판을 짜야 한다. 경상도 지역의 B대학은 전체 신입생 충원율은 떨어지지만 간호·보건 전공으로 유명하다. 전체 충원율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낙제점을 면치 못하지만 이럴 경우 해당지역 의료인력 양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 관계자는 “수도권 정원 감축은 공멸하자는 것”이라며 “지방에서도 일괄적인 정원 기준 잣대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원 정책은 다른 정책과 맞물려 엇박자가 나기 쉽다는 점도 문제다. 당장 지난 14일 정부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인력 3만6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빅3+AI 인력도 7만명 양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신산업 인력 양성에서 부딪히는 것은 정원이다. 첨단학과 정원조정 제도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결손인원을 조정하는 수준으로는 대규모 양성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신산업 정원을 대폭 확대한다면 결국 정원 감축 정책은 힘을 잃는다. 교육부가 강하게 정원 규제를 틀어쥐고 있다고 해도 정부 전체 정책 방향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 한전공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등교육 혁신 전반에 초점을 맞추고 정원 조정이 그에 따라가야 한다.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전국적인 억제 정책보다는 지방을 위주로 규제를 풀고 진흥 정책을 펼쳐야 한다. 대학을 도시산업단지로 지정하고 지역의 혁신거점으로 만드는 캠퍼스혁신파크는 지역과 대학이 공존하는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학령인구 감소가 명백한 상황에서 정원 유지는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 감축을 비롯해 조정은 필요하지만, 고교졸업-대입-취업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모집정원유보제를 주장한다. 대학이 줄어든 정원을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학과를 만들거나 대학원으로 정원을 돌릴 때 일정정도 준비 기간을 주자는 취지다.
황홍규 대교협 사무총장은 “재정여력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정원 감축에 따른 등록금 감소분을 또 대학이 감내하다보면 고등교육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대학이 스스로 새로운 혁신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