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기후변화, 급격한 초고령화 사회에 코로나19가 더해지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앞다퉈 위기 극복을 위한 과학기술개발 정책을 꺼내 들고 인재 양성 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긴박한 시기에 한국의 대처 수준은 앞서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듯하다. 선도자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미래 기술과 세계 시장을 대비하지 못하고 1990년대 말 빠르게 추격하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보다도 못한 상황이다. 세계 주요국의 연구 동향과 계획만 바라보고 따라가지도 못하는 눈치 보기식 대처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반으로 이미 고유 사업을 넘어 다양한 산업 영역으로 지배력을 넓히며 세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 산업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일부 세계 1등 기술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한국은 미래를 대비하고 시장지배자 지위를 갖추기 위해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프로젝트나 유럽연합(EU)의 패스파인더(Pathfinder) 프로그램과 같은 변혁적 연구(High-Risk, High-Reward Transformative Research) 방식을 접목한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을 해야만 한다.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만 미래 먹거리인 새로운 국가산업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변혁적'이란 의미는 지난 2007년에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개봉 당시 인간이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개발·상용화하지는 못해 영상기술(CG:Computer Graphic)로 꾸민 합성 제작 장면이 스크린을 수놓았다. 거대 로봇들이 자동차나 주변 물체 등 실제처럼 자유자재로 변신(Transform)하며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던졌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현재 당시 상상만 하던 일이 하나둘 현실화해 가고 있다. 즉 변혁적 시도는 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실패 위험이 짙거나 불가능한 연구를 실현해서 파급력이 큰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이미 스티브 잡스의 파격적이고 변혁적인 시도의 산물 '아이폰'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지켜봤다. 삼성전자의 이건희 전 회장은 생전에 한 사람의 선도자가 계열사, 나아가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항상 강조했다. 즉 변혁적 시도를 하는 연구자가 미래 시대의 서막을 열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미래를 이끄는 '퍼스트 무버'는 꿈꾸는 '드리머'(Dreamer)를 넘어 현실로 구현하는 '이미지너'(Imaginer)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개념이 변혁적 시도를 하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로 바뀌고 있다. 변혁적 시도를 근간으로 한 연구개발(R&D)은 성공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시간, 즉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어설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실패 리스크를 감수하는 연구자에게는 실패를 용인하고 인내해 줄 국가적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미국 DARPA 프로젝트는 절대로 구현 불가능할 것 같은 기술, 세상 첫 기술들을 개발하며 실패를 용인한다. 미국은 이러한 변혁적 시도를 통해 인터넷(알파넷), 마우스, 드론, 자율주행차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연구 성과를 임상시험에 활용,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앞당겼다. 이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기반으로 변혁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발굴 과제에 대해 끊임없는 지원을 통해 개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기다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끄는 연구자들이 위험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나가는 파급력 큰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도전적이고 변혁적인 시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정부 정책 지원 체계가 서둘러 정착돼야 한다. 더 이상 초격차 기술이 아닌 한국 고유의 유일한 기술로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백창기 포스텍 미래IT융합연구원 부원장 baekck@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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