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산업기술에 '길잡이별' 필요하다

Photo Image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기원전 3000년께 중동 지역에 살던 유목민들은 밤하늘에 익숙했다. 그들은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 황도를 따라 배치된 별자리를 보며 동서남북 방향과 계절 변화를 감지했다고 한다.

별자리 관측은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린 후에도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는 뱃사람, 무역인들에게 나침반 못지않은 중요한 기술이었다. '길잡이별'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여행자와 항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인 셈이었다.

우리 경제와 산업으로 눈을 돌려 보자. 지금까지 K-제조업은 기술 선진국을 길잡이별로 삼고 성공 경로를 밟아 갔다. 선진국이 먼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검증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하는 추격자 전략으로 위험 부담을 던 것은 물론 후발 주자로서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같은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산업 경계가 사라지고 플랫폼을 선점한 승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시대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친환경이나 탄소 중립 대응이라는 어려운 과제까지 추가됐다.

기존 성공 전략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불확실성이 큰 경영 상황이 이어지자 여러 기업이 새로운 캐시카우와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의 2019년 중견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 가운데 25.8%가 신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로 '신규 투자 아이템 발굴이 어려워서'를 꼽았다. 기업들이 현재 느끼는 막막함을 보여 주는 수치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지난해부터 산업계 전반에 걸쳐 산업 구조 혁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업이 미래 기술 청사진과 경영 전략을 적극 수립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지금 시장과 산업 흐름을 읽어 내고 기술 투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했다.

이 같은 시도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 말 자동차, 기계, 정유화학, 섬유, 철강 등 위기에 처한 산업들의 현황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다. 보고서가 언급한 5대 산업은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을 책임진 대표주자다. 그러나 패러다임 변화로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과 친환경 제조 기반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판 뉴딜 성공과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해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산업 분야를 조사, '유망 신산업'도 선정했다. 개인 맞춤형 정밀 의료,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소연료전지 모빌리티, 인간공존형 물류로봇, 청정수소 생산 등 총 10개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경제 파급 효과가 커서 도전해 볼 만한 분야들이다.

최근 이런 노력을 관련 업계에 널리 알리고 더 높은 효율적 투자 전략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 산업부와 함께 '산업기술 미래포럼'을 개최했다. 1차 포럼은 '디지털·탄소중립, K-산업의 미래를 여는 길'을 주제로 열렸다. 앞으로 꾸준히 산업계의 미래 준비에 필요한 방향타를 제시할 예정이다.

길잡이 별자리가 신뢰를 상징하는 이유는 수천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방향을 알렸기 때문이다. 밤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위해 늘 같은 자리에서 불빛을 밝히는 등대처럼 우리 기업에도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방향타가 필요하다. 첫발을 뗀 산업기술 미래 포럼이 불확실한 산업 환경을 헤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우리 기업에 믿음직한 길잡이별, 든든한 등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