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미지급금 소송에서 보험회사들이 잇달아 패소한 가운데 생명보험회사들이 미지급금 환급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KB생명 등이 지난해 즉시연금 분쟁 패소 등에 따른 소비자 환급에 대비해 충당금을 적립한 사실이 각사 실적공시 등을 통해 확인됐다.
즉시연금 분쟁은 2017년 만기형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덜 받은 연금액을 내놓으라고 보험사에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목돈을 맡기면 곧바로 연금 형식으로 보험금이 매달 지급되는 상품이다. 보험사는 만기형 가입자의 만기환급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월액 일부를 공제했는데, 가입자들은 이러한 내용이 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고 설명도 없었다며 당국에 민원을 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생보사들에게 보험금을 더 지급하라고 권고했으나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KB생명 등이 이를 거부해 소송전이 시작됐다. 신한생명과 AIA 생명 등은 분조위 조정을 수용하거나 소송을 중도에 포기, 미지급 연금액을 주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이 2018년에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 규모는 16만명, 8000억∼1조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5만5000명에 43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850억원과 700억원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1월 금융 소비자단체 금융소비자연맹이 주도한 가입자 공동소송 1심에서 가입자들이 미래에셋생명을 상대로 승소했고, 지난달에는 동양생명에 대해서도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들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도 미지급금 규모에 해당하는 충당금을 적립했다.
미래에셋생명과 KB생명은 작년 실적 공시를 통해 즉시연금 소송 대비해 충당금을 적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액수는 밝힐 수 없으나 즉시연금 소송 최종 패소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은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다만 미지급금 규모가 큰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최근 하급심 판결에도 충당금을 아직 적립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실적 관리와 배당 등 경영적 고려로 충당금을 쌓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패소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