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에 오른 안건이 99.5%가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되는 등 대기업 이사회가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2020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양적 확충에 비해 질적 측면에서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 가운데 99.51%는 원안대로 가결됐다. 특히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692건)의 경우 1건을 제외한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넘어갔다.
내부 감시 기능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사실상 '거수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58개 기업집단 소속 266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864명으로 전체 이사의 50.9%를 차지했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6.5%에 이르지만, 최근 1년(2019년 5월∼2020년 5월) 사이 전체 이사회 안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인해 원안대로 통과되지 못한 것은 0.49%에 불과했다.
아울러 총수일가가 등기임원을 맡을 경우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이를 회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51곳의 소속회사 1905개사 가운데 총수일가가 한 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6.4%(313개)였다.
이들 대기업집단 가운데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은 삼성,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대림, 미래에셋, 금호아시아나, 효성, 코오롱, 이랜드, DB, 네이버, 한국타이어, 태광, 동원, 삼천리, 동국제강, 하이트진로, 유진 등 20개였다. 이 가운데 절반은 총수를 포함해 2·3세조차 단 한 곳의 계열사에서도 이사를 맡지 않았다.
다만 대기업집단의 주력회사(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상장사)나 지주회사의 경우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비율이 높았다. 주력회사의 39.8%, 지주회사의 80.8%,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54.9%는 총수일가가 이사로 올라가 있었다.
한편 266개 상장사는 이사회 안에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을 두고 있었다.
이들 위원회 역시 1년간(2019년 5월∼2020년 5월) 상정된 안건(2169건) 중 13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안대로 처리했다.
이사회 내 위원회의 원안 가결률은 총수 없는 집단(97.1%)보다 총수 있는 집단(99.6%)에서 더 높았다.
한편 58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19개 기업집단의 35개 회사는 계열사 퇴직임원 출신 4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공정위는 퇴직임원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내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