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파운드리 초호황에...韓 시스템 반도체 업계 '수급난'

글로벌 시장 수요 급증하면서
수급 불안정해 적기 생산 차질
국내 팹 해외 이전도 부담 더해
제3자 신규 투자책 등 대책 요구

#터치 집적회로(IC) 업체인 A사는 해외 고객사로부터 부담스런 주문을 받았다. 일정 기간 터치IC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걸 담보하라는 요구였다. A사 대표는 “반도체를 생산할 파운드리가 부족하다는 걸 고객사도 알고 수급이 불안정하니 공급을 약속하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업체 B사는 생산에 애를 먹고 있다. 파운드리 부족으로 반도체 출하가 계획만큼 이뤄지지 않아서다. B사 대표는 “파운드리 업체에서도 주문이 워낙 몰려 주문만큼 생산해줄 수 없다고 해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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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하이텍 상우공장 생산라인. <사진=DB하이텍>

글로벌 8인치 파운드리 시장이 초호황이다. 공장을 100% 가동해도 물량을 다 소화 못할 정도다. DB하이텍은 밀려드는 주문에 내년까지 생산 일정이 예약됐고, 매그나칩에서 분리된 키파운드리는 생산 능력보다 2배나 많은 주문이 쏟아지는 등 8인치 파운드리업계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8인치 파운드리가 부족하게 된 건 아날로그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수요 증가 때문이다. 5세대(5G) 이동통신으로 전력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이미지센서도 멀티 카메라 트렌드로 강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8인치 팹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지난 9월 미국의 제재로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까지 공급이 제한되면서 '파운드리 쇼티지'는 더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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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센서 예<사진=SK하이닉스>

문제는 파운드리 호황 이면에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 동시에 싹트고 있다는 데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아무리 좋은 성능을 갖춰도 제조가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시스템 반도체에 파운드리는 필수로, 파운드리가 부족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의 생산 및 사업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10개를 주문하면 5개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공급 부족이 더 심화하면 대형 고객사 위주로 반도체를 생산해 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내 8인치 파운드리 팹이 해외 이전하는 추세인 점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부담스런 대목이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가 충북 청주에서 중국 우시로 8인치 파운드리 설비를 옮겼고, 업계에선 또 다른 업체의 이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의 중국 이전으로 국내에 남은 8인치 파운드리 팹은 삼성전자, DB하이텍, 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 3곳뿐이다.

반도체는 8인치보다 면적이 큰 12인치 웨이퍼를 활용해 만드는 방법도 있다. 12인치를 활용하면 한 번에 더 많은 반도체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12인치 웨이퍼는 8인치 대비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 칩 고가의 제품을 제외하고 원가 상승에 따라 시장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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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웨이퍼

전문가들은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과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파운드리 증설과 해외 유휴 팹 등을 확보해서 공급을 늘려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수요기업, 반도체 설계 업체, 파운드리 인력 등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이지만 칩을 생산할 팹만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기존 반도체 기업이 아닌 제3자가 8인치 팹 투자에 나서면 생태계 육성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상무는 “신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유휴 팹 확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파운드리 업체 관계자는 “최근 UMC가 도시바 8인치 팹을 인수하려한다는 소식이 있다”면서 “종합반도체회사(IDM)들이 사용하지 않는 8인치 팹을 활용한다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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