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법학박사)
이전의 칼럼에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에서는 “하도급법”이라고 칭한다) 제12조의3을 중심으로 하도급법의 목적, 하도급법상 위반행위와 이에 대한 구제방법으로서 손해배상과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실제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여부를 검토한 판결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이 판결이 중소기업에게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본다.
이하에서는 2014년 11월 28일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11. 28. 선고 2013가합82598, 512430 판결을 살펴본다. 이 판결은 하도급법 제12조의3이 규정하고 있는 “기술자료 제공요구 금지”와 관련되어 있다. 우선 이 판결의 사실관계에 대하여 살펴본다. 2012년 2월 17일 원고는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에 사용될 콤팩트모듈의 개발을 피고에게 위탁하기로 하는 “개발위탁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후 원고는 이 계약에 따라 피고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에 부가세까지 더하여 2억 1,780만 원을 지급하였다. 피고는 2013년 3월말 제품개발을 완료한 후 원고에게 검수요청을 하였지만, 원고는 제품수령과 검수를 하지 않았다. 2013년 4월 19일 피고는 원고에게 검수이행을 촉구하기 위하여 제품개발완료 사실을 통지하였고, 또한 검수이행과 잔금지급을 최고하였다. 2013년 4월 26일 원고는 기술 자료에 해당하는 “콤팩트모듈에 대한 소스코드(이하에서는 ‘소스코드’라고 칭한다)”를 요구하면서, 피고가 이를 인도하면 검수를 진행하고, 잔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통지하였다. 2013년 7월 11일 피고는 소스코드는 자신의 원천기술로서 이 계약의 따른 제공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제공을 거절하였다.
다만 피고는 검수를 위하여 필요한 실행파일, 회로도 등을 제공하겠다고 하면서, 원고에게 실행파일, 회로도 등 수령, 검수진행, 잔금지급을 요청하였다. 2013년 7월 18일 원고는 피고가 소스코드를 인도하지 아니하면 이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고 통보하였고, 2013년 7월 23일 피고는 원고에게 소스코드를 인도할 수 없다는 통지를 하였다. 2013년 7월 29일 원고는 피고에게 2013년 8월 2일까지 소스코드를 인도하지 않으면, 2013년 8월 2일 이 계약이 해지된다는 통보를 하였다.
한편 2013년 8월 22일 피고는 원고의 소스코드요구는 “하도급법”이라 위반이라는 이유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하였다. 2013년 10월 2일 분쟁조정위원회는 “본 분쟁과 관련하여 원고의 소스코드 요구행위가 ‘기술탈취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원고는 피고에게 미지급대금 1억 4,520만 원을 지급하여야 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계약을 통해 산출된 개발품과 회로도만을 납품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합의권고안을 제시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수락하지 아니하여 공정거래위원회로 이첩되었다.
이후 원고는 피고에게 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당해 계약의 결과물인 팩트모듈의 성능을 검수하기 위해서는 소스코드가 필요하고, 당해 계약에서도 개발제품과 관련한 지적재산권을 원고와 피고가 공유하기로 하였으므로, 피고는 소스코드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에도 거절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2013년 7월 29일자로 하였던 계약해제 의사표시에 따라 당해 계약은 해제되었으므로, 피고는 자신에게 기지급대금인 2억 1,780만 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피고는 원고의 하도급법상 위반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면서, 소스코드는 당해 계약에 따른 제공대상이 아니고, 원고의 요구는 하도급법 제12조의3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당한 기술요구행위”에 해당함에도, 원고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해제하고 대금지급을 거절하였으므로 당해 계약을 해제하고, 또한 원고는 하도급법 제8조 제1항을 위반하여 피고에게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에 따라 미지급 대금 1억 4,520만 원의 “3배”에 해당하는 4억 3,560만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선 지방법원은 ① 이 사건 계약서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납품할 것은 콤팩트 모듈과 그 결과물인 회로도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지만, “소스코드”에 대해서는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계약서가 언급하는 지적재산권 등은 개발제품과 회로도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② 피고는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적외선열상카메라 모듈 등을 제작할 수 있는 원천기술인 소스코드를 개발하였고, 이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특정 디텍터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듈의 개발제작을 의뢰받으면, 소스코드를 변경⋅수정하여 특정 디텍터에 맞는 모듈 등을 제작⋅납품하여 왔다는 점, ③ 이 계약 당시 피고의 담당직원은 원고의 직원에게 콤팩트모듈과 회로도를 제공할 수 있으나, 소스코드는 제공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명확하였다는 점, ④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작성⋅권고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사업 표준하도급계약서에도 소스코드를 “기술자료”로 명시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당해 계약에 따라 피고가 원고에게 제공해야 할 결과물에 콤팩트모듈의 제작에 필요한 소스코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지방법원은 원고가 당사자 간의 약정에 없는 소스코드의 제공을 요구하면서 이에 대한 거절을 이유로 당해 계약을 해제한 것은 부적법하기 때문에, 본소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와 달리 지방법원은 원고의 부당한 요구와 잔금지급의 거절 등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피고의 계약해제는 적법하기 때문에, 원고는 피고에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서 “이행이익”, 즉 당해 계약에 따른 대금 중에서 이미 지급한 금액을 공제한 1억 4,52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지방법원은 ⅰ) 하도급법 제8조 제1항과 제35조 제2항에 의하면, 원사업자가 제조 등의 위탁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목적물 등의 납품 등에 대한 수령 또는 인수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행위로 인하여 수급업자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수급업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고, ⅱ) 하도급법 제35조 제3항에 의하면 이와 같은 배상액을 정함에 있어서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손해 발생 우려를 인식한 정도, 위반행위로 인하여 수급사업자와 다른 사람이 입은 피해규모,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사업자가 취득한 경제적 이익 등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는데, ⅲ)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원고의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인하여 이행이익을 초과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반면에, 원고가 위반행위로 인하여 잔대금의 지급을 늦추는 것 이외에 특별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잔대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정함이 상당하므로, 이를 초과하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원고가 청구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각하였다.
이 판결은 당사자 간의 계약의 해석에 근거하여 피고의 계약해제는 적법하다는 이유로, 원고가 피고에게 이행하지 않은 잔금에 대한 이행을 인용하였지만, 원고의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인하여 피고가 이행이익을 초과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정황과 원고가 위반행위로 인하여 잔대금의 지급을 늦추는 것 외에 특별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보이지 않는 정황을 고려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 판결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수급사업자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원사업자인 대기업이 하도급계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술자료 제공요구행위”를 하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당해 계약을 해제할 것이라고 기술자료 제공에 대한 강요를 할 경우, 계약해제가 두려운 나머지 기술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이 판결에서 보듯이 이러한 경우 대기업의 계약해제는 부적법한 것으로 판결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에 대기업이 자신이 보유하는 기술 자료를 요구할 경우, 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반드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 판결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작성⋅권고하는 “소프트웨어산업 표준하도급계약서” 제20조3에는 하도급법 제12조의3이 규정하는 “기술자료 제공요구 금지”와 “기술자료 유용금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이 규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중소기업은 하도급법 제35조 제3항이 규정하는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7가지 정황, 즉 ①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② 위반행위로 인하여 수급사업자와 다른 사람이 입은 피해규모, ③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사업자가 취득한 경제적 이익, ④ 위반행위에 따른 벌금 및 과징금, ⑤ 위반행위의 기간·횟수 등, ⑥ 원사업자의 재산상태, ⑦ 원사업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와 이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정황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대기업의 행위에 내재하는 비난가능성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이 판결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정황에 근거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았는데, 피고가 다양한 정황증거를 통하여 원고의 행위에 내재하는 비난가능성을 증명하였더라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판결의 사실관계에서 살펴보았듯이, 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분쟁조정위원회는 원고의 소스코드 요구행위가 하도급법이 금지하고 있는 “기술탈취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하도급법 제12조의3이 규정하는 사항에 해당한다. 만일 하도급법 제12조의3이 규정하는 사항 중에서 원사업자의 행위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대상이 되는 하도급법 제12조의3 제3항이 언급하는 “기술자료 유용금지”로 인정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기술 자료의 제공요구를 한 것만으로는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상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이 판결에서는 하도급법 제8조 제1항이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여부판단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원고에게 기술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자료 유용행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경제적, 사업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대기업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였거나, 체결하려는 중소기업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하도급법의 목적”을 유념하면서, 하도급계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에 대하여 하도급법상 구제방법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