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에서 지식재산권(IP)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반기 이후 라인업을 살펴보면 주요 게임사의 중량감 있는 라인업은 전부 구작 IP를 활용한 게임이다.
바람의 나라, 던전앤파이터, 데카론, 뮤, 리니지, 블레이드앤소울, 아이온, 트릭스터, 팡야, 세븐나이츠,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테일즈위버, 제노니아, 서머너즈 워, 아바, 블레스, 씰 온라인, 슈퍼스트링, 용비불패, 미르, 크로스파이어, 블랙서바이벌, 열혈강호, 창세기전, 디케이 온라인, 로스트아크 등이 개발 중이다. 라그나로크는 IP 게임만 39종 라인업을 늘어놓을 수 있다. 국내 IP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타워즈, 이브, 대항해시대 등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게임사도 IP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IP 확보, 활용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다. 김창한 크래프톤 신임 대표는 최근 가진 취임식에서 IP 프랜차이즈에 대한 투자 의사를 밝혔다. 크래프톤 대표 IP '배틀그라운드'처럼 확장 가능성이 있는 게임 콘텐츠를 웹툰, 드라마, 영화, e스포츠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응용할 계획이다. 지속 가능한 게임 IP 발굴도 계속 시도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배틀그라운드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엔트리브 IP를 자사 캐시카우인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라인업에 편입시킨다. 무게감 있게 다룬다. 넥슨 역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IP 확보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유명한 IP에 투자할 계획이다. 넷마블은 자사 IP 게임을 출시해 IP 가치를 인정받는 동시에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스마일게이트는 의사결정기구 명칭에 IP를 명시하고 나섰다. 경영체제를 '그룹 IP 경영 협의체'로 전환하고 IP 명문 기업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IP에 투자하지만 신규 IP 개발은 더딘 상황이다. 펄어비스를 제외하면 완전 신규 IP 라인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 초반 한국 게임산업 전성기 시절 게임이 지금도 최고 인기를 구가한다. 초기 혁신 의지를 잃고 원작 후광과 영광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작 IP 주목도가 높다 보니 일단 게임을 개발하고 IP를 사서 입히는 개발 방식도 행해진다. 이미 개발 중인 게임에 IP를 입히다 보니 초기 방향성과 맞지 않아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크래프톤에서 제작하던 '프로젝트BB'는 유전을 주제로 개발 중이던 게임이었다. 이후 황금가지를 통해 '눈물을 마시는 새' IP를 구입해 덮어씌웠으나 결국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방향성 없이 흥행 문법에 입각해 모양만 입히는 방식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IP 흥행에 매몰돼 새로운 시도 없이 돌려막는 행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IP 중요성이 크지만 게임은 결국 게임성에 의해 판가름난다”며 “구작 후광에만 기대다 보면 산업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과거 유산을 글로벌 감각으로 재해석한 시도라는 분석이다. 디즈니가 마블 IP로 게임, 영화, 코믹스,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익을 내는 것을 사례로 든다.
IP작은 원작 명성에 힘입어 흥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기존 이용자는 물론이고 새로운 이용자까지 유입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재미와 흥행성이 검증된 게임을 개선해 보다 안정적인 이용자층을 다질 수 있다. 또 새 창작보다 적은 비용으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 결과물 질이 조금 낮아도 추억 고전게임은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게이머 문화 혜택도 받는다.
제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깊이 있는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다른 오리지널 작품뿐만 아니라 원작까지도 경쟁작이 되거나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부담이 큰 편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규정할 수 있는 창조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던전앤파이터' '미르의전설2' IP는 현재 매출 회사 기둥이자 미래 회사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네오플은 영업이익 90%에 게임업체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IP를 축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전략을 수립했다. 던파 페스트를 통해 이용자와 스킨쉽을 강화하고 던파 모바일을 중국에 출시해 거대 시장에서 흥행을 이어가는 기반을 마련한다. 미르IP 권리를 인정받으면 위메이드는 연 2000억원에 달하는 로열티 사업을 기대할 수 있다. 위메이드 2019년 매출은 1139억원이다. 이에 힘입어 미르IP 게임을 모아놓은 '전기상점'을 계획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또 IP는 IP 자체로 대명사화 돼 생명을 갖기도 한다. 오랜기간 시리즈물로 자리를 잡은 '드래곤퀘스트' '파이널판타지' 혹은 '울티마' '위저드리' 처럼 이름만 듣고도 브랜딩이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