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소재 발견에 따른 기술 발전을 통해 문명을 구축해 왔다. 구석기 시대에는 돌을 다듬어서 만든 주먹도끼로 수렵 생활을 했고, 신석기 시대에는 흙으로 빚은 빗살무늬토기로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정착 생활에 적응했다. 구리를 사용한 청동기 시대와 철을 다룰 수 있게 된 철기 시대에는 소재 및 도구가 점차 고도화돼 인류 사회는 국가 형태로 발전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온갖 첨단 기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마법의 돌'이라 불리는 '세라믹'이 주목받고 있다. 세라믹 어원은 그리스어 케라모스(Keramos)로, 흙을 불에 구워 만든 물건이란 뜻이다. 점토로 빚은 형상을 가마에 구워 만드는 도자기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세라믹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정말 다양하게 활용된다. 무심코 지나쳐 온 수많은 제품이 알고 보면 세라믹을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전통 세라믹 대표 소재로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유리창을 비롯해 도자기, 식기류, 타일, 내화물, 시멘트, 벽돌 등이 있다.
각종 세라믹 소재는 꾸준한 연구개발(R&D)을 거쳐 첨단 세라믹으로 진화했다. 다양한 산업에서 핵심 소재로 쓰인다. 첨단 세라믹은 광물에서 채취한 세라믹 원료 분말과 정제한 인공 분말을 고도의 기술로 합성한 것으로,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등 독특한 특성을 발현하는 신소재다.
첨단 세라믹 원료의 대표 소재로는 산화알루미늄, 산화규소, 질화알루미늄, 탄화규소, 타이타늄산바륨 등이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의 약 80%를 차지하는 여러 부품과 반도체 공정 장비 핵심 부품에 사용된다. 이밖에도 첨단 세라믹은 현대 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전기·자율주행차, 항공우주 분야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세라믹 산업에서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특히 세계 세라믹 시장에서 압도하는 우위에 있는 일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R&D 기획·지원 등 다각도로 노력에 매진해 왔다. 지난해 7월 일본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사태를 겪기도 했다. 풍부한 광물자원 및 막대한 정부 투자를 토대로 우리나라와 여러 산업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중국의 성장도 위험 요소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4월 '소재·부품·장비산업 특별조치법'(이하 소부장 특별법)을 시행,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기반을 마련했다. 세라믹 분야 R&D에도 약 300억원을 지원한다. 이전 투자와 비교, 지원 예산이 대폭 늘었다. 세라믹 소재 산업 분야에서 대외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정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 연구기관, 대학 등이 협업해서 수년 안에 괄목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바야흐로 21세기는 '2차 신석기 시대'다. 흙으로 빚은 토기를 통해 세라믹 기술을 얻어 정착 생활로 전환할 수 있게 된 인류가 이제는 세라믹 신소재를 활용해 또 다른 혁신을 일궈 가고 있다. 이 혁신 속에는 차세대 이차전지·센서 등 온갖 첨단 제품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는 없던 초고속 5세대(G) 이동통신용 세라믹 신소재, 화재 위험이 없는 대용량 세라믹 전지 등 새롭고 신기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돌' 세라믹이 앞으로 또 어떤 분야에 사용될지 궁금하다. 세라믹이 열어 가는 새로운 시대를 통해 인류가 또 한 번 문명 전환점을 맞길 기대해 본다.
정봉용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세라믹 PD jby67@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