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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일본 수출규제는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성장의 변곡점이 됐습니다. 비상 상황 이후를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최리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1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가치 사슬의 선순환을 완전히 거스른 일본 정부 움직임으로 '초비상 상황'을 겪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 사례가 오히려 반도체 호황에 가려졌던 열악한 국내 소부장 생태계 실태와 성장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정부는 소부장 업계에 투자해도 결국 결과물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배를 더욱 불리는 지원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대기업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외산 기업 제품을 두고 굳이 국내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이들의 생각과 다른 상황이 벌어져 인식의 전환이 함께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반도체 산업 성장세는 여느 선진국 산업 발전 모델과 다르지 않았다. 칩 성장이 성숙기에 이르면 이를 뒷받침했던 소부장 산업 기술력이 크게 성장하는 형태로 미국, 일본은 성장해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칩 기술이 세계 시장을 압도하면서 더뎠던 국내 소부장 업계 성장이 담론으로 떠오르는 시기에, 결정적 사건으로 정부와 대기업이 투자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지난 1년 간 정부의 새로운 투자는 물론 대기업의 소부장 업체 제품 평가 의지가 상당히 늘어난 점은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소부장 업체와 대기업 협력으로 지난 1년 간 비상상황을 헤쳐 나갔다. 이후 램리서치, 머크 등 해외 유력 소부장 기업의 연구개발(R&D) 현지화가 이어지는 등 한국의 '반도체 허브화'도 이어지고 있다.

최 교수는 비상 상황에 이은 호재가 이어지는 만큼 앞으로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소부장 생태계 강화를 위한 전방위 투자와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정부와 소자업체가 끈끈하게 협력하는 모델 구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자를 만드는 대기업이 국내 소부장 기업 제품 평가 횟수를 늘리면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최 교수는 “모든 소부장 품목을 내재화할 수는 없다”면서도 “글로벌 가치 사슬의 흐름을 유지하는 선에서 해외 유력 기업들이 R&D와 소스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국내 소자 업체가 투자를 이어갈 만한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는 세계 굴지 소자 대기업이 있는 만큼 다른 산업군에 비해 성장 가능성이 뚜렷하고 잠재력이 상당히 크다”면서 “아직은 기술 수준이 열악한 소부장 업체가 많지만 투자를 하면 클 수 있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