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시작한 지 한 달, 21대 국회는 29일 국민에게 원 구성 협상 최종 결렬이라는 비보를 전했다. 여야 모두 협치를 내걸며 야심차게 출발한 21대 국회지만 한 달 성적표는 초라하다. 협치는 실종됐고, 앞으로 의정 전망은 안개 속이다. 18개 상임위 전체를 여당이 가져가고,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여당의 뜻대로 신속 처리 절차에 들어가지만 여야 합의에 기반을 둔 '일하는 국회' 운영은 숙제로 남았다.
◇여야 협상 결렬…상임위원장 선출 강행
21대 국회가 29일 운영위 김태년, 정무위 윤관석, 교육위 유기홍,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박광온, 행정안전위 서영교, 문화체육관광위 도종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이개호, 환경노동위 송옥주, 국토교통위 진선미, 여성가족위 정춘숙, 예산결산특별위 정성호 등 11개 상임위 위원장을 선출했다. 지난 15일 6개 상임위(법사위, 기재위, 외통위, 국방위, 산중위, 복지위)에 이어 총 17개 상임위원회 의원장이 결정됐다.
이날 위원장 선출 본회의에도 야당 교섭단체인 미래통합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통합당은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사전 협의 없이 강행하자 반발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이콧했다. 결국 17개 상임위 위원장 모두 민주당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1개 상임위인 정보위는 국회법상 동의가 필요한 야당 국회부의장 자리가 공석인 관계로 선출하지 않았다.
사실상 18개 상임위를 한 당이 독점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통합당은 이미 민주당에게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라며 공을 던진 상황이라 정보위 역시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간 원 구성 협상은 21대 국회 초기부터 난항을 예고했다. 총선 결과 177석 거대여당이 출범하면서 수적 열세에 몰린 통합당은 정부·여당 견제장치로 법사위와 예결위 사수 의지를 내비쳤다. 반면 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책임 정치를 위해 원칙대로 모든 상임위를 가져갈 수 있다며 야당을 압박했다.
원 구성 협의는 법사위원장을 두고 여야 모두 양보하지 않으면서 쉽사리 접점을 찾지 못했다. 15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상임위 강제 배정과 위원장 선출을 강행하면서 여야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상임위에 강제 배정된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원 사임계를 제출하며 국회는 냉각기를 가졌다.
25일 주 원내대표가 국회에 복귀 하면서 원 구성 협상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치국면은 계속됐다. 26일부터 주말을 낀 여야 원내대표간 마라톤 협상에도 법사위원장에 대한 입장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이 17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했지만 당분간 반쪽 상임위로 운영될 전망이다. 통합당은 상임위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통합당 관계자는 “수적 열세 상황에서 18개 상임위를 모두 뺏길 수밖에 없다”며 “18개 상임위 독식으로 책임정치를 공언한 민주당에게 공을 넘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국회 기상도 '흐림'…여야 전략은?
원 구성 결과가 18개 상임위 여당 독식으로 나오면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향후 정치 행보도 갈릴 전망이다.
민주당은 미뤄왔던 3차 추경심사에 곧바로 돌입한다. 각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고 예결위,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추경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다음달 4일로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회기 안에 처리하기 위함이다. 사법개혁도 속도를 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법률이 정한대로 출범시키고 검찰개혁도 마무리한다는 복안이다.
통합당은 아직 상임위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상임위 회의 자체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방적으로 구성된 상임위지만 주요 국정 사안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만큼 정부·여당의 독주를 맡는 견제자 역할에 집중할 방침이다. 팩트와 정책 논리 대안 중심의 상임위 활동으로 대안을 마련해 간다는 구상이다.
향후 법사위 운영방안 해법은 여야 모두에게 숙제로 남았다. 이번 원 구성 최종 결렬의 주 원인도 법사위에 있었다.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는 탓에 매번 원 구성 때마다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법안 계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여야 최종 협상에서도 법사위원장을 나눠 맡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후반기 위원장 지분을 놓고 합의를 보지 못했다. 통합당은 여야가 번갈아가며 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차기 정권을 가져가는 집권당이 위원장을 가져가는 안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접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양당 모두 법사위 운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오늘로 21대 국회가 임기 시작한 지 꼭 한 달이 됐지만 개원식도, 원 구성도 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며 “코로나19 국가 비상시기를 더 이상 외면 할 수 없어 원 구성을 마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