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 경쟁력 확보 핵심은 가속기 클러스터
정치적 고려 아닌 활용과 효율 극대화에 초점 맞춰야
기존 인프라 및 인력 연계 산업분야 R&D 지원
품질 경쟁력과 장비·인력 확보가 성공 관건

방사광가속기는 국가기초과학과 산업기술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 거대연구시설이다. 반도체와 소재, 바이오 등 국가 전략산업을 성장시키는 핵심역할을 수행한다.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전염병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앞당기는 필수 첨단연구 장비이기도 하다. 기초과학부터 산업체 응용연구에 이르기까지 활용범위가 사실상 한계가 없어 선진국들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방사광가속기 시설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1조원 규모 초대형 프로젝트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이하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사업 역시 4차산업 분야 글로벌 선두경쟁에서 퍼스트무버가 되려는 포석이다.

그동안 세계적 연구성과를 도출해온 3·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경상북도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포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포항을 세계 최대 가속기 클러스터로 조성해 지역을 넘어 우리나라 국가기초과학·산업분야 R&D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 1995년과 2017년 각각 운영을 시작한 3·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그동안 6000여명의 연구자가 1600여개 과제 수행을 지원, 세계적 연구성과를 도출하는 역할을 했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한계에 이른 3·4세대 방사광가속기 성능과 용량에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경상북도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기존 가속기와 연계하면 산업과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운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3·4세대를 기초연구형으로,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실증형으로 활용하는 역할분담으로 가속기 활용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포항에는 포스텍(포항공대)과 한동대, 동국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나노융합기술원 등 방사광가속기 연구인력과 인프라가 탄탄하다. 이를 제대로 연계·활용한다면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신규 구축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고 활용성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포항에 조성될 세포막단백질연구소(2020년 12월 준공예정)와 차세대 배터리파크까지 연계한다면 관련 산업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이미 3·4세대 가속기 인근 남구 블로밸리산단에 33만㎡ 규모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 후보지를 확보했다. 기존 가속기연구소 인력을 적극 활용, 매년 500억원 이상 운영비 절감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기존 가속기 전력과 상·하수도 등 유틸리티 시설과 이용자 숙소, 가속기과학관 등 각종 부대시설을 공유함으로써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비 가운데 1000억원가량을 절감하고, 가속기 건립 기간도 1년가량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에 드는 국가 재정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무엇보다 시급한 신규 가속기 활용으로 산업지원 시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그동안 가속기 부대시설인 이용자 숙소와 가속기과학관 건립에 260억원의 지방비를 부담했고, 포스코와 포스텍 역시 최초 가속기 건설 당시 900여억원의 건립비를 부담하는 등 초기 가속기 국산화에 큰 역할을 해왔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가 포항에 건립되면 무엇보다 지난 25년간 가속기를 운영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신규 가속기는 거대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초기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빠르게 안정적 활용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비용 절감뿐 아니라 시급을 다투는 연구성과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존 가속기 건설과 운영·연구 노하우를 활용해야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해외 선진국들이 방사광 가속기를 한 곳에 집중, 가속기 클러스터를 속속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대학이 운영 중인 스탠포드 가속기센터(SLAC)는 선형가속기(LCLS), 원형가속기(SSRL), Cryo-EM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현지 기업들은 각종 가속기가 한곳에 집중된 가속기센터에 모여 연구성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효고현에 원형가속기(Spring-8)와 선형가속기(SACLA) 등 3개의 가속기를 운영, 융합연구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포항에는 3세대(원형)와 4세대(선형) 가속기, 극저온전자현미경 등 3개의 대형연구시설이 있고, 인근 경주에는 양성자가속기가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방사광가속기 주관연구기관인 포스텍은 현재 미국 국립가속기연구소, 영국 다이아몬드광원연구소, 일본 싱크로트론 방사광연구소 및 이화학연구소, 스위스 PSI,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등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가속기의 산업적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수년전부터 가속기 산업적 활용을 정부에 건의하는 한편, 지역에서 가속기 기반 신약개발프로젝트, 가속기 기반 그린신소재산업육성사업 등을 자체 기획해 추진했다. 지난해부터는 국내 최초로 가속기 기반 신약개발 프로젝트 핵심사업인 세포막단백질연구소를 국비 지원으로 설립 중이며, 이차전지산업 육성을 위해 가속기 기반 차세대 배터리파크 조성사업도 예타사업으로 기획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도약과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가속기를 한 곳에 집적해 기존 가속기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야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서 “정치적 고려나 지역 안배 논리가 개입되면 신규 가속기 건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포항지역발전협의회와 포항시의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3·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고, 가속기 건설경험과 운영 전문인력이 풍부한 포항에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에는 현재 포항을 비롯해 강원 춘천, 충북 청주, 전남 나주 등 4곳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유치의향서를 제출했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내달 평가를 거쳐 입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개요]
![[기획]포항, 세계 최대 가속기 클러스터 꿈꾼다](https://img.etnews.com/photonews/2004/1296160_20200427155501_878_T0001_550.png)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