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여권 압승으로 끝나면서 유통산업 규제 불씨가 재점화됐다. 이번에는 복합쇼핑몰이다. 여당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복합쇼핑몰 규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의무휴업을 적용하고 입지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를 뒷받침할 연구용역 보고서까지 마련됐다.
정치권의 전방위 압박에 유통업계는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안 그래도 내수 부진과 온라인 침탈로 하향세에 접어든 오프라인 유통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다. 규제 일변도 정책이 국내 유통산업을 공생이 아닌 공멸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규제 정당성을 놓고 찬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다. 여당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규제에 따른 골목상권 활성화 효과는 미비한 데다, 오히려 복합몰이 상권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스타필드 효과' 누린 지역 상권
실제 복합쇼핑몰이 지역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유통학회는 스타필드시티 위례가 문을 연지 1년만에 반경 5㎞내 상권 매출이 이전보다 6.3%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복합쇼핑몰 집객력이 외부 고객을 유치하는 효과를 냈다. 방문 고객을 분석한 결과 반경 3km 이외에서 스타필드시티 위례를 찾은 고객 비중은 66.2%로 나타났다. 하남 지역시민은 전체 고객 중 9.2%에 그쳤고, 나머지 90.8%는 하남시 외 지역에서 유입됐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스타필드 위례 주변(반경 5km) 의류점과 음식점, 농수축산물 매장 매출은 출점 전보다 각각 38.3%, 5.7% 8.3% 증가했다. 이는 복합쇼핑몰이 인근 소상공인의 매출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와 상반되는 결과다.
이들은 복합쇼핑몰 방문 당일 주변 상권도 동시에 이용하며 낙수효과도 이끌어냈다. 고객 카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타필드시티 위례 이용 당일 반경 3㎞내 점포 동시 이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의류점 경우 35.1%, 음식점은 19.9%, 슈퍼마켓은 13.8%, 편의점은 10.2%를 동시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복합쇼핑몰은 단순 판매보다는 여가 시설에 초점을 둔 종합 엔터테인먼트 시설로, 전통시장과 경쟁관계로 보기 어렵다”면서 “주말 영업을 규제할 경우 소비 위축과 입점 소상공인 피해 등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 규제 과실, 온라인·식자재마트가 챙겼다
복합쇼핑몰에 앞서 2012년부터 8년째 의무휴업 규제를 받고 있는 대형마트의 경우 규제 실효성 논란이 인다. 기존 영업규제가 대형마트 매출액만 감소시켰을 뿐 반대급부인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대규모점포 규제효과와 정책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대형마트가 규제에 얽매인 사이 온라인쇼핑과 식자재마트만 반사이익을 누렸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무휴업 규제 도입 후 연매출 50억원 이상의 중대형 슈퍼마켓 매출 비중이 2013년 18.0%에서 2018년 25.1% 증가한 반면, 대형마트 점유율은 59.7%에서 51.2%로 줄었다. 같은 기간 연매출 5억원 미만 소상공인 슈퍼마켓 매출 비중은 5.7%에서 5.3%로 감소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소비자 수요가 대형마트에서 중대형 슈퍼마켓으로 옮겨가면서 전통시장을 포함한 영세 슈퍼마켓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면서 “대규모점포 영업 제한이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규제 목적을 살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 소매판매액 비중도 의무휴업 규제가 시작된 2012년 대형마트(25.7%)가 전통시장(11.5%)을 크게 앞섰지만, 2017년 대형마트 비중은 15.7%로 줄고 전통시장도 10.5%로 동반 하락했다. 오히려 대형마트가 주춤한 틈을 타 온라인쇼핑 점유율이 8.0%포인트 늘어난 28.5%로 치솟으며 반사이익을 누렸다.
전문가들은 유통산업 정책을 규제 중심에서 육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형 유통매장과 소상공인을 경쟁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골목상권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협력 사례를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재근 대한상의 산업조사본부장은 보고서를 통해 “유통산업 역학구조를 잘 이해하고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전통시장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해외에선 전통시장 보호를 유통산업 범주에서 다루지 않고 관광, 지역개발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데 우리도 지원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