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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분자진단 바이오기업 씨젠에서 RT-PCR 진단시약을 실험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한국 감염병 진단기술이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를 신속하게 진단해 조기 격리하는 것이 방역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한국 진단키트 수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해외로부터 국내 대응 경험을 배우려는 요청도 빗발친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진단에 사용하는 실시간 유전자 증폭 검사기법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진단 시약과 검사 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의 해외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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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개 국가가 한국 진단키트 요청…18개사 제품 수출길 올라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코로나19 방역물품 수출을 공식 요청한 국가는 81개국이다. 민간 차원에서 협력이 진행되는 경우를 합하면 117개국에 이른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진단키트 등 방역물품을 긴급하게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덴마크는 한국 업체의 코로나19 진단키트 구매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해 보건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3월 25일 현재) 긴급사용승인 5개 제품을 포함해 총 18개 제품이 수출허가를 받아 해외 30개국 이상에 수출됐다. 수출 허가를 받고 각 수출국 규정에 따라 최종 승인을 받으면 정식으로 해당 국가 내 판매가 가능하다. 오히려 국내 여러 기업이 유럽인증을 먼저 받고 국내 수출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병목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바이오협회 산하 체외진단기업협의회 관계자는 “국내외 인·허가를 끝낸 회사들 중 주문량에 대응할 수 있는 양산 시스템을 갖춘 회사들이 실제 많은 계약과 물량 주문을 받고 있다”면서 “유럽 체외진단시약 인증(CE-IVD)을 확보한 회사들은 유럽과 동남아 진출을 시작하고 있고 이제 막 수출허가를 받았거나 진행되고 있는 경우 계약과 제품 주문이 진행 중”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코로나19 이후 일약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씨젠은 현재 진단키트 '올플렉스'를 전 세계 42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씨젠 진단키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 특이 유전자(E gene, RdRp gene, N gene)를 모두 검출할 수 있어 검사 정확도가 높다.

씨젠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회자된 '석사는 박스 접고 박사는 테이프 붙인다'는 이야기가 우스개가 아닐 정도로 전 직원이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생산 물량이 일주일에 100만개를 넘어서 계속 늘고 있으며 이 중 90% 이상이 해외에 수출된다”고 말했다.

국내 긴급사용승인 대상인 RT-PCR 진단키트 외에 항원·항체 면역반응검사 제품도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선진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처럼 분자진단을 할 수 있는 설비와 인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이 면역진단키트를 요청한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RT-PCR 외에 체내 항체 'IgM'과 'IgG'를 확인해 코로나19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항체 검사시약으로도 추가로 수출 허가를 받았다. 수젠텍도 혈액으로 IgG 항체와 IgM 항체를 동시에 진단해 10분 내 코로나19 감염여부를 진단하는 신속진단키트를 수출하고 있다.

식약처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미생물 병원체 검출을 위한 유전자 증폭 검사기법'이 최근 국제표준화기구 의료기기 기술위원회에서 국제표준안(DIS)으로 승인됐다. 최종적으로 회원국 전체 승인을 받으면 연내 국제표준으로 제정된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진단에 사용하는 RT-PCR 등 다양한 핵산증폭 방식 검사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이다. 국제표준안이 최종 승인되면 우리나라 코로나19 진단 역량의 국제 위상이 보다 높아지고 국내 업체들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산 진단키트 인기 왜? 발빠른 준비, 높은 진단역량, 많은 검사물량 통해 신뢰성 확보

한국산 진단키트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서구권보다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겪으면서 선제적인 키트 개발이 가능했고 안정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면서 성능을 검증하고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국내 체외진단키트 제조업체들의 기술적 성숙도도 높아졌다. 누적 40만건 검사를 진행하며 유효성도 검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하루 검사 물량은 몇십 건에 불과했다. 진단에 소요되는 시간도 24시간 이상이었다. 현재는 신규 진단시약과 RT-PCR 검사법이 보급되면서 검사시간이 6시간 이내로 대폭 줄고 검사 건수가 늘어났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진행한 코로나19 검사는 누적 41만건이 넘는다. 하루에 많게는 1만8000건이 넘는 검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업계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발빠르게 제품을 준비했고 정부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 도입한 '긴급사용승인' 제도를 통해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2주 만인 2월 4일 첫 진단시약 제품을 승인했다. 승인을 받은 5개 진단키트 기업은 기술력과 빠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한국이 유럽과 미국보다 먼저 감염확산이 진행됐고 여기에 맞춰 투명한 정보공개, 검사를 통해 신뢰 있는 데이터를 쌓았다”면서 “해외 주요 진단 대기업이 코로나19에 진단키트 양산을 고민하는 사이 국내 벤처기업은 적극적으로 시장상황을 판단, 정부지원 아래 빠르게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진단키트 신뢰도 문제도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체코와 스페인 등 중국으로부터 진단키트를 수입한 국가가 정확도 문제로 수입을 철회한다고 보도했다. 체코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입한 24억원 상당 진단키트 오류가 8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은 중국 바이오이지에서 수입한 진단키트 정확도가 30%에 불과하다며 이들 키트를 중국으로 다시 반환하기로 했다.

임채승 고대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검사기술력 수준은 검사 정도관리에 달려있는데 우리나라 대학병원 전문성과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병원 수준과 비슷하게 뛰어나다”면서 “미국식 제도를 따라 전문의 양성과 중앙집중식 검사실 운영을 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랩지노믹스 관계자는 “국내 진단키트 생산 기업 기술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과거 사스, 메르스 이후 질병관리본부, 식약처 등에서 급성호흡기감염증에 대해 국책연구과제를 지속 진행했고 해당 분야에 대한 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여 곧바로 진단키트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