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7월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적인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정책과 방법론이 쏟아지고 있다. 소부장 혁신은 우리 주력산업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핵심 과제라는 분석이다. 이에 전자신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 추진하는 '나노융합2020사업'에 참여하는 소재(석경에이티·에스엠에스·서남), 부품(아모그린텍), 장비(엔젯) 기업 대표로부터 국내 소부장 산업 생태계 문제점을 진단하고 산·학·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방향에 대해 현장 목소리를 듣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참석자(가나다순)
△문승현 서남 대표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변도영 엔젯 대표
△송용설 아모그린텍 대표
△이길성 에스엠에스 대표
△임형섭 석경에이티 대표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미래산업부장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부장)=일본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반년 정도 됐다. 이후 소부장 국산화와 함께 근본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어젠다가 됐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업계에서 느끼시는 바를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송용설(아모그린텍 대표)=중소기업 입장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수요기업과 협업이나 만남이 전보다 원활히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급 기업들이 많이 노력했다면 이제는 수요기업에서도 움직이는 상황이다.
◇변도영(엔젯 대표)=기술이 있어도 벤처기업은 대기업 협력업체 등록조차 어렵다. 소부장이 이슈가 되면서 협력업체 등록은 물론 대기업 엔지니어들과 작업하며 실제 공정에 적용하는 길이 열리고 품질 인증을 받아 양산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수요기업 태도가 '오픈마인드'가 됐다.
◇임형섭(석경에이티 대표)=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거래소에서 소부장 기업 상장 심사 기간을 45일에서 30일로 줄여줬다. 소부장 기술특례 상장도 수월해져 1개 전문기관으로부터만 A등급을 받으면 된다. 소부장 기업이 시장에서 쉽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문승현(서남 대표)=우리도 혜택을 받았다. 상장 준비 중 결정적인 순간에 소부장 업체의 기업공개 장벽이 낮아져서 지난주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실리콘 반도체, 액정 디스플레이, 고온 초전도 소재 등 새로운 소재가 발견돼 산업화되기까지 기본 30년이 걸린다. 여기 모인 분들도 최소 10~20년 이상 기술을 개발한 분들이다. 이번 기회로 조급증 없이 갈 수 있는 방향이 모색되면 좋겠다.
◇이길성(에스엠에스 대표)=벤처캐피털(VC)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 회사의 가치를 높이 평가 받는 단계에 와있는 것 같다. 수출 규제 이후 소재 관련 산업을 전략 산업이라 일컫고 '소부장'이라는 용어까지 고유명사화돼서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회=소부장 분야만큼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출발점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경쟁력을 어떻게 꾸준히 유지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이를 위해 꼭 챙겨야하거나 개선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해 달라.
◇변도영=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엑시트 모델은 IPO를 하거나, 죽음의 계곡을 못 넘고 죽거나 두 가지다. 미국은 M&A도 되고 대학에서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술이전 되는 등 선순환 모델이 많다. 창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재무적인 부분에 대한 정책 지원이 준비돼야 지속가능한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송용설=소부장은 빛을 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나치게 효율만 강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장인정신을 가진 엔지니어와 기업을 키워야 한다. 정부 R&D만 하더라도 중복성 시비 때문에 한 번 개발한 다시 과제는 시도할 수 없는 구조다. 교수들도 계속 신규 과제를 찾아야하는 상황에서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R&D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문승현=R&D는 주로 기업이 연구소나 학교에서 연구한 걸 받아쓰는 구조다. 기업이 아무리 많은 연구를 수행해도 인건비 인정을 안 해주고 제약이 많고 역차별이 있다. 결국 돈이 되는 건 제품인데 제품 연구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소부장이 하나로 모인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료 R&D는 지원을 받아도 장비를 개발한다고 하면 R&D 과제를 받기 힘들다. 차세대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사업도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소부장은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R&D뿐 아니라 첨단기술일수록 실제 사용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야 한다. 시범사업이라던지 대기업에서 나서서 개발된 소재가 쓰일 수 있도록 열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박종구(나노융합2020사업단장)=나노 제품은 세상에 없던 제품들이다. 표준도 그렇고 갖가지가 다 문제다. 기업이 스스로 리스크테이킹을 해야한다. 미국은 군수용으로 리스크테이킹을 한다. 유럽은 국가 조달 시스템으로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신기술을 채택한다. 기업들이 계속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은 자금이나 인력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소나 대학에서 공학하는 사람들이 현장 문제를 같이 고민하면 부족한 인력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연구소 장비도 활용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사회=그럼 자연스럽게 생태계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산·학·연·관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송용설=산학연 협력을 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학교나 연구소 기술의 완성도와 기업이 쓸 수 있는 완성도 간 갭이 크다는 점이다. 개발된 기술을 가져오더라도 제품화하려면 최소 3년이 더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활성화가 잘 안 된다.
현재 산학연 협력이라는 게 대부분 인맥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기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 나노융합2020사업이 상당 부분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노는 사용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보니 안 쓰게 된다. 레퍼런스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 대신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증, 표준 이런 것들이다.
◇임형섭=산학연은 이해관계가 다르다. 학교나 연구소는 논문 쓰는데 바쁘다. 반면에 기업은 특허가 제일 중요하다. 나노융합2020사업에 참여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만나는 포럼 형태의 모임을 시작했다. 기업들의 특수한 요구사항을 맞춰줄 수 있는 학교나 연구소가 없다면 산-산 협력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디어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만 바탕이 된다면 자기가 가진 정보를 오픈할 수 있다. 선의로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연구회나 모임이 많아야 한다.
◇변도영=산-산 모임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 학에서 산으로, 연에서 산으로 왜 기술이전이 안 될까? 평가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제일 중요한건 논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논문 수가 반으로 줄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SCI 논문 몇 편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대적 상황이 됐다. 중요한 기술을 개발해서 특허내고 기업에 기술이전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본인이 창업하는 등 변화가 이뤄져야 공동 발전이 된다.
◇이길성=인력 양성 관련해서는 몇 년 전 시행됐던 '산업체 박사'라는 정책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연계해 수업도 듣고 기업에서 필요한 연구를 하면서 학위를 받는 제도다. 산업계에 숨은 고수들이 많다. 학부 수업을 2~3년 듣고 논문을 쓰고 석·박사 학위를 받는 것과 기업에서 연구하면서 학위를 받는 것이 질적인 면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그럼 이번에는 정부 정책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기술사업화에 있어서 정부 R&D의 방향성과 가장 필요한 지원이나 역할에 대해 얘기해보자.
◇변도영=시대마다 국가 R&D 어젠다도 달라졌다. 10년 전에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보니 평가도 그에 맞춰서 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중복과제에 대한 제한을 이제는 풀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우수한 성과가 나오면 집중해도 된다.
◇송용설=궁극적으로 매출 관점에서 수요자를 찾아야한다. 사업화를 전제로 매출이 정부 R&D 성과 지표 중 하나로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신경 쓰게 될 거다. 매출하려면 수요기업을 찾게 되고 산업 트렌드도 살펴보게 된다. 산학연 인프라를 동원해 고객 요구를 제한된 시간 내에 만족시키려는 노력도 하게 된다.
매출을 늘리려면 글로벌화가 필수다. R&D든 마케팅이든 글로벌 관점을 가지고 가야한다. 해외 특허를 주요국 다섯 곳에 내려면 최소 5000만원이 든다. 국제특허 출원 비용이 높다보니 정부 R&D로 소화가 안된다. 앞으로 글로벌화 돼야하는데 R&D 콘셉트 자체를 고민해봐야 한다.
◇임형섭=시장 개척을 하려면 나노 소재를 써주는 회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 개척을 먼저 하자고 생각했다. 해외 전시회 참가 비용을 지원을 해주는 곳도 많다. 나가서 상사든 코트라든 도와줄 전문가들을 만나야 한다. 기술사업화라는 것은 R&D는 기본이고 물건이 팔려야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소재기업들은 이런데 약하다.
◇사회=중요한 정책 포인트인 것 같다. 기술사업화를 하려면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 들어갈 수 있게 정부도 집중해야 한다. 공공부문 역할도 중요하다. 시장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R&D는 물론 후속 기술사업화를 위해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기술사업화 지원 전문조직인 나노융합2020사업단이 대표 사례인 것 같다.
◇문승현=나노산업처럼 잠재력과 파급력이 큰 분야에 대해서는 지속 지원이 필요한데 지원 방향이 산업화가 이뤄지는데 초점을 맞춰야한다. 뜻을 가진 사람은 산학연에 다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게 잘 섞일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노융합2020사업단이 그런 이니셔티브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변도영=10년 전과 비교해보면 현재는 융합, 협업, 기술이전을 강조하는 쪽으로 어젠다가 바뀌고 있다. 내가 처음부터 다 해서 사업화까지 가려면 보통 15년이 걸린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이뤄지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해놓은 성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꼭 대규모 사업이 아니라 연구소나 대학 특허를 토대로 하는 1~2억원 규모 작은 과제도 괜찮다. 중소기업과 구매조건부 과제도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박종구=일본 문제는 급한 불이니까 꺼야하지만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부장 기업을 만드는 게 중요한 문제다. 그러려면 중소기업에 필요한 지식이 계속 공급돼야 한다. 스스로 기술개발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고 낭비 요소도 많다. 지식 공급이 계속 이뤄지려면 산-산이든 산-학이든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기술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넘어와야 성공하는 거다. 긴 호흡으로 전문가와 인적 네트워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리=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