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특허 출원 세계 5대 국가다. 국내총생산(GDP), 인구 대비 출원 건수로는 세계 1위다. 연간 20만여건이 쏟아진다. 매년 심사해야 할 특허가 늘어가지만 심사관은 수는 적정 수에 크게 모자란다.
이 때문에 심사관의 업무 부담이 크고 심사에 들이는 시간도 다른 나라 대비 짧다. 지난해 기준 출원 1건당 심사 투입시간은 12.3시간으로 일본 17.9시간 대비 현저히 부족하다. 심사관 1인당 담당하는 특허 심사수도 지난해 기준 192건으로 유럽(55건), 미국·중국(77건) 일본(166건)에 비해 많았다.
디자인 심사 건수는 1555건으로 일본(651건), 미국(233건)과의 차이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 심사관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94명 증가하는데 그쳐 920여명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엔 한 명도 늘어나지 않았고 이듬해 30명, 지난해에는 16명 증원에 그쳤다. 지금까지 특허 출원 증가 추세와 앞으로 4차 산업혁명 관련 융·복합기술 특허 출원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모자란 수치라는 분석이다. 심사관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정원을 확대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심사관 부족은 특허 심사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했다. 심사관은 심사단계에서 출원기술과 유사한 선행기술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심사 1건당 선행기술 검색 시간을 확대해야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다.
대안으로 선행기술 검색시간 확대를 위해 선행 기술 조사를 외부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허청 선행기술조사 사업 예산은 2016년 321억원에서 올해 344억원으로 늘었다. 심사관 선행기술조사 업무를 외주에 맡기는 사업이다.
민간 인력 활용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무효처리된 특허 1337건 가운데 1272건(95%)가 선행기술 때문이었다. 선행조사가 미흡했다는 방증이다. 특허 권리를 지나치게 좁히거나 넓게 해석해 등록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선 선행조사업체가 특허 심사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특허청이 선행기술조사 업무 외주화 비중을 높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관리,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사관 정원을 적정 수준까지 끌어 올려야 하지만 예산, 정원 당국은 특정 기관의 정원만 예외적으로 지속 늘릴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식재산(IP)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특허 강국을 표방하지만 현재 정책, 지원을 보면 구호에 그치고 있다”면서 “심사관 정원 적정화 등과 함께 다양한 측면에서 심사 품질 개선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특허청이 2006년 기업형 중앙책임운영 기관으로 전환된 이후 사업 비중이 높아지면서 심사 품질 관리에 투자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본래 특허청 취지에 맞게 심사 업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우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신산업 분야 융합기술 관련 특허 심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라도 심사 시스템에 대한 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허청 측은 “인력증원 시 특허 심사관을 중점으로 증원하고 있고, 융·복합 기술에 대한 협의심사 확대 등 심사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허청은 중앙 책임운영기관이지만 운영은 일반 중앙행정기관과 거의 동일한 상황”이라면서 “사업 집중으로 인한 특허 품질 저하는 없다”고 덧붙였다.
<주요 국가 심사관 1인당 특허심사 처리 건 수>
한국1555건
일본651건
미국233건
자료:특허청(2018년 기준)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