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Google)은 세계 유저 90% 이상이 사용하는 검색엔진이다. 2000년 초 닷컴버블이 한창이었을 때에도 구글 만큼은 '잘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촉망받았다. 투자를 받아 버티긴 했지만 3년 동안 적자였다.
기술이 있으면 뭘 하나? 수익으로 연결할 사업 모델이 없는데. 동갑내기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 매각을 결심한다. 그러나 엄청난 비전을 잉태한 회사를 사겠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둘은 전문경영인을 찾았다. 비효율적인 내부시스템을 정비하고 회사를 안정시킬 적임자가 필요했다. 구글 초기 투자자들이 에릭 슈미트를 추천했다. 슈미트는 적자 상태인 작은 벤처기업 CEO 자리가 내키지 않았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패기와 기술 콘텐츠만으로 슈미트를 설득했다. 페이지와 브린의 열정과 비전, 통찰력을 믿기로 했다며 둘의 손을 잡았다.
1955년생인 에릭 슈미트는 프린스턴대에서 전기공학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Berkly)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갑내기 창업자들과 무려 18년 차이다. 슈미트는 실리콘벨리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를 어른스럽게 발휘한다. 그는 구글에 와서, 제대로 된 밥상 차리기에 전념했다. 제품 및 서비스에 들어가는 시간은 단축하고 검색엔진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슈미트는 황금분할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핵심 사업에 70%, 관련 프로젝트 사업에 20%, 신규개발 사업에 10% 역량을 쏟았다. 슈미트의 합류 이후 구글은 창업 3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다.
슈미트는 2007년, 애플iOS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OS) 스마트폰 플랫폼을 발표했다. 슈미트는 스티브 잡스가 모바일 시장을 독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슈미트와 잡스는 한때 '절친'이었다. 휴대폰에 사활을 건 잡스는 “옛 친구인 슈미트에게 자신의 주머니가 털렸다”며 그를 맹비난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현실은 혹독하다. 영원한 친구도 없거니와 경쟁이 시작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 사실을 잡스가 모를 리 없건만.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CEO였던 스티브 발머는 더 한심했다. 구글을 심각한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단지 종이 위의 단어 몇 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특히 무료인 구글 안드로이드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라며 방심했다. 윈도폰은 처참했고 안드로이드 작전은 대성공이다.
페이지와 브린이 신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사이, 슈미트는 정부 관계자와 규제, 법안에 관한 협상을 벌였다. 구글식 황금분할경영이다. 두 천재 창업자는 핵심 기술개발에, 슈미트는 혁신경영에 전담했다. 2011년, 그가 10년 만에 대표직을 내놓았다. 구글호의 방향키를 창업주 페이지에게 돌려주었다. 당시 실리콘벨리는 슈미트가 없는 구글에 대해 '이변'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슈미트는 “더 이상 일일 어른 감독직(day-to-day adult supervision)은 필요 없다”고 대응했다. 2017년에는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슈미트는 그간 구글을 '창고 회사'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키우면서 매출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창업주와 함께 시스템을 만들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전 직원과 공유했고, 능률이 오르는 직장문화를 조성했다. 슈미트가 통통 튀는 젊은 두 창업주에게 가르친 건, 상상을 현실에 맞게 조율하는 방법이다. 상상력 풍부한 젊은이들의 비전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박선경 인터랙티브 콘텐츠학 박사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