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재생에너지 시대, 전력계획 패러다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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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과거 언론 기사들은 주로 수요 폭증으로 인한 정전 공포를 다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송전망 부족,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한국전력의 재정 악화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는 전력 문제의 본질이 '공급 부족'에서 '계통 관리'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전기를 '얼마나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실어 나르고 관리하느냐'가 핵심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출력제어'는 시급한 현안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수요를 초과할 때 태양광이나 풍력을 강제로 멈추는 일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독일은 2023년 한 해에만 10.5TWh의 전력을 버렸고, 비중이 10%를 갓 넘은 국내 상황도 긴박하다. 제주도는 2023년 총 181회의 출력제어를 기록하며 계통의 한계를 드러냈다. 캘리포니아의 '덕 커브(Duck Curve)'나 스코틀랜드의 막대한 보상금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31년까지 32GW가 추가 연계될 호남 등 육지에서도 이미 출력제어를 전제로 한 접속 제도가 시행 중이다.

태양광 급증으로 전력 수급 구조도 변했다. 과거엔 하절기 낮 시간대가 최대 수요였으나, 이제는 태양광이 발전하는 낮보다 해가 진 저녁이 더 위험하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수요의 시간대 분포 자체를 바꾸는 '덕 커브'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피크 시간이 달라지면 필요한 설비도 달라진다. 한낮 피크는 태양광으로 대응하지만, 저녁 피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나 빠른 출력 조정이 가능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여전히 '연간 최대전력 한 시점'에 매몰돼 있다. 1년 8760시간 중 단 한 순간만 보고 '예비율 22% 확보'라는 과제에 집중할 뿐, 피크 시간대의 변화나 재생에너지의 실시간 기여도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출력제어는 단순히 발전량을 버리는 것 이상의 문제다. 이는 사업자에게 수익 불확실성을 의미하며, 금융 조달을 막아 신규 투자를 위축시킨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기업과의 전력구매계약(PPA) 이행에도 차질을 빚으며, 결과적으로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수조원을 들여 설비를 짓고도 정작 발전량을 버리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도입한 재생에너지 입찰제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입찰제 이후 출력제어 통계는 줄었으나, 이는 사업자들이 음의 가격으로 입찰해 '스스로' 시장에서 배제된 결과일 수 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통계에서 보이지 않게 가려진 셈이다.

국제적으로는 출력제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유연성 자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ESS 확충, 수요반응(DR)을 통한 부하 이동, 섹터커플링(P2H, V2G) 등이 대표적이다. 화석연료 발전기의 최소출력을 낮추는 운전 관행 개선 역시 이러한 유연성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제도 개편을 넘어 계통 운영 방식 전반의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공언했다. 이제 고민의 축은 “어떻게 더 보급할까”에서 “늘어난 전력을 어떻게 다 활용할까”로 옮겨가야 한다. 하지만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시간대별 출력제어 위험이나 유연성 확보 목표는 여전히 중장기 검토 과제에 머물러 있다. 유럽 송전망운영기구(ENTSO-E)가 8760시간 전체의 출력 제어량도 고민해 자원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2050 탄소중립은 먼 미래가 아니다. 지금 계획이 바뀌지 않으면 한편에서는 송전망 부족을 외치고, 다른 편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기막힌 상황을 맞을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설비를 짓는 것만이 아니라, 그 설비를 제대로 쓸 수 있는 계획을 만드는 일이다. 전력계획의 무게중심을 화석연료 중심의 적정성에서 재생에너지 통합과 유연성 중심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pilseok.k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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