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가 재제조 산업 띄우기에 나섰다. 세계 선진 재제조 산업 동향, 주요국 성공 사례, 전후방 파급효과 등을 담은 보고서를 내고, 침체한 지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정부 주도 재제조 산업 육성과 지원책 수립을 촉구했다.
'재제조(remanufacturing)'는 사용 중이거나 수명이 다된 제품을 분해·세척·검사·보수·조정·재조립 과정을 거쳐 새 제품과 동일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갖춘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투입 기술, 제조 과정과 목표, 효과 등에서 재사용(reuse)이나 재활용(recycle)과 다르다.
재제조의 가장 큰 특징은 신제품 대비 투입 에너지, 재료 등 자원 절감 효과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재제조품 가격은 신제품의 50~70%로 저렴하다. 친환경 미래부품산업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최근에는 첨단기술과 접목하면서 그 효용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속 3D프린팅 기술과 결합해 새 제품을 뛰어 넘는 성능을 갖춘 재제조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구 환경문제, 친환경·자원 재활용에 대한 각성에서 출발한 재제조 산업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2015년 기준 미국 시장은 연 52조원, 유럽은 40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10여년 전 잠시나마 재제조 산업 붐이 일었다.
이로 인해 2016년 국내 처음으로 재제조 단체인 한국건설기계·부품재제조협회가 설립됐고, 건설기계 분야 재제조 시장을 활성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방부는 2016년 군용 차량 수리부품에 재제조 부품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군장비 정비규정'을 개정했다.
범정부 차원에서는 2017년 제10차 한국표준산업분류 개정에서 '자동차재제조부품제조업'을 신설, 재제조기업의 공장등록과 산업통계 길을 열었다.
하지만 국내 재제조품 생산과 공급, 구매 등 전체 시장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현재 재제조품으로 생산·공급이 가능한 품목은 자동차부품 33종, 전기전자부품 14종, 건설기계부품 3종 등 50여개에 불과하다. 재제조 시장 규모는 미국 5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 재제조가 아닌 재활용, 재사용 시장이다.
국내외 재제조 산업 동향과 정책을 연구해 온 박상후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재제조품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견과 산업계의 신제품 판매 위축 우려, 환경과 자원재활용에 관한 인식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내 재제조 산업은 선진국과 달리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제조 산업, 지역 전통제조업 구원투수로
부산시와 부산상의는 재제조 산업을 이슈화해 정부를 움직이고 재제조 산업을 육성해 위기 상황인 조선기자재, 자동차·기계부품 등 지역 전통 제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부산상의가 박상후 교수에 의뢰해 내놓은 '재제조 산업 동향 및 정책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은 국내 재제조 산업 육성의 최적지다. 재제조 원소스인 조선·자동차·기계 부품산업이 집적돼 있고, 재제조품을 수출할 수 있는 항만을 비롯한 물류인프라도 탄탄하다.
보고서는 동남권에 가장 적합하고 즉시 성과를 볼 수 있는 재제조 분야로 중대형 선박부품과 수리조선을 꼽았다.
중대형 선박부품은 고가에 교체 주기가 길다. 이로 인해 재제조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고 경기변화로 인한 영향은 작다. 선박부품과 연계한 수리조선은 각종 재제조품의 주수요처가 될 수 있다. 또 해운, 수산, 방위 등 전방산업, 기계, 철강, 전기전자 등 후방산업과 동반성장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재제조 산업 육성이 3D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서비스 확산에 일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결과를 내놨다. 재제조 과정에 금속 3D프린팅, 표면 피복, 3D스캐닝 등 최신 기술이 필요하고, 부품 수명이나 교체주기를 센서 기반 IoT, 빅데이터 기술로 미리 예측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부산상의는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첨단 재제조 기술지원 허브 R&D센터 설립 △정부 차원의 재제조 산업 인증체계 구축 △원제품 제조기업과 재제조기업 간 상생협력 체계 구축 △재제조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과 공공재 의무사용 등을 재제조 산업 육성 방안으로 제시했다.
◇제도개선 등 풀어야 할 과제
재제조업계는 재제조 산업 육성과 향후 지속성장을 위해 품질인증제 같은 제도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재제조 산업은 원제조기업 협력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 재제조품을 만들려면 원제품 설계도를 비롯한 품질·규격 정보가 뒷받침돼야 하고, 부품 교체와 교체 후 원활한 사용을 위한 기능 정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원제조기업이 우려하는 재제조품 안전성, 유해물질 배출, 산업재산권 침해 등을 품질인증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재제조품을 녹색상품으로 인정하는 등 재제조 시장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도 포함한다. 정부가 앞장서 재제조품 이용을 확대하고, 예산 절감과 환경보호를 위해 공공기관의 재제조품 사용을 늘리는 제도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산업 육성 인프라 측면에서는 정부 지원 재제조 허브 R&D센터 구축이 시급하다. 산업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재제조 기술과 공정 개발은 물론 시장 확대를 위한 재제조품 품질인증까지 종합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부산시와 부산상의는 이 같은 지역 제조업계 목소리를 담은 재제조 산업 육성 정책제안을 정리해 정부 관련 부처에 직접 건의할 계획이다.
허용도 부산상의 회장은 “재제조 산업 생태계 조성 성공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 첨단재제조기술센터(ARTC)를 다녀왔다. ARTC를 벤치마킹해 국내에 재제조 기술개발에서 생산, 인증까지 종합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면 제도개선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부산은 재제조에 적합한 중대형 선박부품과 수리조선을 근접 지원할 수 있는 산·학·연 협력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정부 지원만 뒷받침되면 재제조 산업 메카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1<재제조와 재사용·재활용 비교>
* X:나쁨, △:보통, ○:양호, ◎:우수
표2<주요 국가별 재제조 산업 규모>
표3<국내 품목별 신품과 재제조품 시장 규모>
표4<국내 지역별 재제조 기업 분포>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자원순환기술지원센터, 부산상의 국내외 재제조산업 동향 보고서 참조(2015년 기준)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