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펄스(EMP) 공격에 대비하고자 추진되던 '금융권 공동 데이터 소산센터' 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금정추)는 은행에서 소산센터 구축 시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금융권 공동 소산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잠정 연기했다. 이미 은행들이 각자 EMP 차폐 시설을 갖춘 만큼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동 소산센터에 문제가 생길 경우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배포한 '2018년 주요 정보통신 기반 시설 EMP 취약점 분석 평가 기준'을 참고했다. 안정적인 EMP 차폐 재질을 사용할 것, 방수·소방 시설을 필수로 둘 것 등 기본적인 지침 사항을 담았다.
현재 금정추 의결 과정에 있으며 연내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연내 한은 금정추에서 각 은행에 소산센터 설립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로 했다”며 “공동 소산센터는 세부 구축방안에 관한 금융기관 간 이견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공동 데이터 소산센터 사업은 2017년 북한 EMP 공격 위협이 노골화되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EMP는 핵폭발로 형성되는 전자기 충격파로, 과전류를 흘려보내 전자회로를 파괴한다. 최대 반경 1000㎞ 이내 전자기기가 모두 마비된다. 금융망 마비로 거래 기록 유실 시 최소 10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데이터 사본을 원격지에 보관하는 '소산'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당초 금융권 공동 벙커형 백업센터 사업으로 시작됐다. 2014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후 재원을 마련하고 부지까지 선정했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후 2017년 EMP 우려가 터지면서 소산센터로 사업 범위가 축소됐다. 금융위원회도 2018년 업무보고 주요 과제로 '공동 데이터 소산센터 구축' 건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남북 평화모드가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금융위가 정무위에 제출한 2019년 업무보고에서는 관련 내용조차 빠졌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5월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한 데서 별반 나아가지 못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EMP나 소산센터 건은 관심 밖이었다.
업계는 EMP 공격에 대한 여론이 식으니 금융권 주요 사업도 어그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위 측에 관련 건으로 연락했더니 담당자조차 사업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며 “여론에 따라 금융권 주요 사업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